'영지'엔 석가탑의 그림자를 비추지 않은 '무영탑'으로

31대 신문대왕은 문무왕을 위해 감은사를 동해가에 세웠다.

그 이듬해 5월 동쪽 바다에서 조그마한 산이 나타나 감은사를 향해 물결을 따라 왔다갔다 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왕은 이를 이상히 여겨 일관에게 점을 치게 했다. 일관이 말하기를 선왕(문무왕)께서 지금 바다의 용이 되어 삼한을 지키고 계시며 또 김유신공도 33천의 한 아들로서 지금 대신이 되어, 이 두 성인이 덕을 함께 하여 이 성을 지킬 보물을 지려고 하오니 만일 폐하께서 바닷가로 가시면 반드시 값비싼 큰 보물을 얻을것입니다라고 했다.

왕은 기뻐하여 해번으로 나가자 과연 산이 있었다. 급히 사람을 보내어 살펴보게 했더니 산의 모양이 마치 거북이의 머리와 같고 그 위에는 한 그루 대나무가 서 있었는데 낮에는 둘로 갈라졌다가 밤이면 하나로 합치는 것이었다.

그때 왕은 감은사에 머물렀다. 그 다음날 5월 8일 오시에 대나무가 다시 합하여 하나가 되더니 천지가 진동하고 바람과 비가 심해져 8일동안 어두웠다가 그 달 16일에야 바람도 개고 물결도 평탄해졌다.

((아사달과 아사녀)) 왕은 이 산이 대나무와 함께 갈라지기도 하고 합쳐지기도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고 묻자 용이 대답하기를 이것은 비유컨대 한쪽 손바닥을 치면 소리가 없고 두 손이 마주치면 소리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대나무도 합쳐야만 소리가 나니 성왕께서 소리로 천하를 다스릴 징조입니다. 대왕께서 이 대나무를 가지고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화평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대왕의 아버님께서 바닷속의 큰 용이 되셨고, 유신은 다시 천신이 되어 두 성인이 마음을 같이 하여 이런 값비싼 보물을 보내시어 나로 하여금 바치게 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왕은 굉장히 기뻐하여 오색 비단과 금과 옥을 주고서 사람을 시켜 대나무를 베어가지고 배를 타고 바다에서 나왔다. 이때 갑자기 산과 용도 모두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여기에서 받은 옥대의 여러 장식들은 진짜 용이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태자가 떼어서 물에 담그어 본즉, 곧 그것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한다.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 적병이 물러가며 질병이 낫고 또 가뭄때는 비가 내리며, 장마때에는 비가 그치며, 바람이 자고 파도가 가라앉게 되는 이상한 힘이 그 속에 있었다. 그리하여 이 피리의 이름을 만파식적이라 하고 국가의 보물로서 소중히 했다고 한다.
  
한편 석가탑을 창건할 때 김대성은 당시 가장 뛰어난 석공이라 알려진 백제의 후손 아사달을 불렀다.

아사달이 탑에 온 정성을 기울이는 동안 한 해 두 해가 흘렀다.

남편 일이 하루빨리 성취되어 기쁘게 만날 날만을 고대하며 그리움을 달래던 아사녀는 기다리다 못해 불국사로 찾아왔다.

그러나 탑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여자를 들일 수 없다는 금기 때문에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천리 길을 달려온 아사녀는 남편을 만나려는 뜻을 포기할 수 없어 날마다 불국사문 앞을 서성거리며 먼발치로나마 남편을 보고 싶어했다.

이를 보다 못한 스님이 꾀를 내었다.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그마한 못이 있소. 지성으로 빈다면 탑 공사가 끝나는 대로 탑의 그림자가 못에 비칠 것이오. 그러면 남편도 볼 수 있을 것이오." 

그 이튿날부터 아사녀는 온종일 못을 들여다보며 탑의 그림자가 비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무심한 수면에는 탑의 그림자가 떠오를 줄 몰랐다.

상심한 아사녀는 고향으로 되돌아갈 기력조차 잃고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못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탑을 완성한 아사달이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그 못으로 한걸음에 달려갔으나 아내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아내를 그리워하며 못 주변을 방황하고 있는데, 아내의 모습이 홀연히 앞산의 바윗돌에 겹쳐지는 것이 아닌가.

웃는 듯하다가 사라지고 또 그 웃는 모습은 인자한 부처님의 모습이 되기도 하였다.

아사달은 그 바위에 아내의 모습을 새기기 시작했다.

조각을 마친 아사달은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하나 뒷일은 전해진 바 없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 못을 '영지' 라 부르고 끝내 그림자를 비추지 않은 석가탑을 '무영탑' 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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