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들어올 때가 되지 않았는데 왜 왔느냐" 고 호통

호기리 석장승 신기마을에서는 석장승이 하나 있는데 이 석장승은 미륵석불이라고 하여 전북 민속자료 1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석불은 해마다 칠월 칠석이면 남원시 노암동에 살았던 김양근의 일족들이 제사를 모셨다고 전해오는데, 김양근의 6대조인 김기수가 조선조 정조 22년(1798)에 세상을 떠난 지 3일만에 다시 환생하여 꿈속에서 본 노인을 찾다가 땅속에서 찾아냈다고 한다.
 
 "어떤 노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아 장롱속에 넣었으니 찾아보라" 고 하는 것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자손들이 애통해 하다가 환생한 반가움과 이 뜻밖의 말에 어리둥절 하면서도 장롱속을 찾아보았으나 편지는 나오지 않았다.
 
한편 환생한 김기수는 정신이 들어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토막 꿈같기도 하고 현실같기도 하여 자손들에게 자기가 그동안 겪은 일을 들려주기 시작하였다.

 "내가 죽자 한 노인이 길을 인도하여 따라 가는데 한눈도 팔지 못하도록 엄하게 단속하며 만일 무의식 중에 곁눈질이라고 할라치면 심한 매질까지 해 가며 똑바로 앞만 바라보며 가도록 하였다. 

이렇게 해서 옆이나 뒤를 전혀 살피지 못한 채 한참을 가로라니 웬 대궐 같은 집이 나타나고 그 속에 많은 문서들이 들어차 있는데 서류를 맡아보는 이가 일일이 문서를 살피며 조사를 하더니 아직 들어올 때가 되지 않았는데 왜 왔느냐고 호통을 치면서 이 길로 다시 나가되, 처음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한눈 팔지 말고 똑바로 앞만 바라보고 나가야 하지 만일 곁눈질이라도 한다면 그냥 살려보내지 않겠노라고 으름장을 놓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리더구나. 그래서 앞만 바라보고 다시 나오는데 앞에 강물이 나타나므로 길이 막혀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 노인이 다시 나타나서 편지 한 통을 주면서 빨리 가지고 가라며, 또 빨리 가지 않는다고 매질을 하므로 정신없이 헤매다가 물위에 걸쳐 있는 겨릅대를 딛고 가다가 그만 물속으로 풍덩 빠져버렸지.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눈을 떠보니 그때가 바로 내가 환생하게 된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 후 남원고을 방방곡곡을 헤매며 저승에서 본 노인을 찾아 다니다가 지금의 신기리에서 논 속에 묻혀 있던 미륵석불을 발견하여 캐냈는데, 이 미륵석불이 바로 그 노인임을 확인하고 크게 감사하며 매년 칠월 칠석날, 이 미륵불을 찾아와 제사를 드리게 되었는데 그 후에도 자손들이 대를 이어가며 제사 온 뒤로 가세가 늘어 후대에 원의 부호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장승은 패랭이를 쓴 것이 특징이다.

 한편 범바위는 하주마을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산으로 산중턱에 있는 바위인데 옛날에는 가뭄이 들면 생돼지를 가지고 가서 범바위 옆에 있는 샘물로 깨끗이 씻겨 새 돼지 피를 범바위에 뿌리고 돼지를 바쳐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기우제에도 제관이 있는데 제관 선정이 매우 엄격하였다고 한다.

또한 제관이 잘못된 행위를 하면 그 사람은 천벌을 받게되어 죽음까지 당했다고 한다. 범바위는 송치마을과 하주마을을 끼고 있는데 하주마을에서는 길조이지만 송치마을에서는 흉조의 원상이었다고 한다.

 범바위 모양이 송치마을을 향해 발을 치켜세우고 먹이를 공격하는 형상을 하고 있고 하주마을에서는 그 옆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송치마을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죽으면 범바위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송치마을 사람들이 범바위를 없애려고 산으로 올라가 범바위를 무너뜨리는 순간 맑은 대낮에 천둥과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기우제를 모시지 않고 가는 길마저도 없어졌다고 한다. 단지, 하주마을에서 보면 멀리 나무들 사이 너머에 흰 부분이 조금 보이는데 그게 범바위 머리부분이라고 한다. 
 
옛날 운봉에는 뱀이 많아 백성들의 고충이 많았다 한다. 생각 끝에 현감은 명을 내려 운봉을 들어오는 사람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뱀을 한 마리씩 잡아 연못에 던지라고 하였다.

이렇듯 뱀을 잡아들이자, 어느 날 현감의 꿈에 큰 구렁이가 변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나타나 자신의 부하를 마구 잡아 씨를 말리니 차후에 계속 이러하다면 현감의 자손에 화를 미칠 것이라고 말하며 바로 동헌 지붕(혹은 마루 밑이라고도 함)으로 사라졌는데 꿈이었다.

다음날 현감은 운봉에서 제일 큰 가마솥을 가져다 기름을 부어 펄펄 끓인 후에 불어 달군 붉은 집게로 지붕을 파헤치자 구렁이 두 마리가 나타났다. 한 마리는 끓는 가마솥에 넣었으나 한 마리는 넣지 못해 놓치고 말았다.

그러자 그 구렁이는 세 마리의 파랑새가 되어 서울 현감의 집으로 날아갔다. 집에 도착한 세 마리 파랑새가 처마 밑에서 울자 현감의 아들 셋이 그만 죽고 말았다.(혹은 죽은 구렁이의 파란 기운이 하늘로 치솟아 북쪽으로 사라지더니 3일 후에 현감의 세 아들이 죽었다는 부음을 들었다고도 한다) 그 후 영을 내려 운봉에서 뱀 잡는 일을 그만 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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