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지상대리자'로 불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오전 서울공항에 도착해 역사적인 4박5일간의 한국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지구의 반바퀴를 돌아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교황의 일성은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고 왔다"는 것이었다. 영접나온 박근혜 대통령이 "교황 방한을 계기로 국민에게 따뜻한 위로가 전해지고 분단과 대립의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시대가 열리길 바란다"는 인사말에 대해 화답하는 말이었지만, 한반도를 방문하면서 교황이 무엇에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메시지였다. 교황은 정부 주요 공직자 및 외교단이 참석한 청와대 연설에서도 "한국의 평화 추구는 이 지역 전체와 전쟁에 지친 전 세계의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우리 마음에 절실한 대의"라고 강조했다. 또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면서 "정의는 과거의 불의를 잊지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해 그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한다"고 말했다. 교황의 `평화·정의론'은 죽기 살기로 대립과 반목의 길만 골라 가고 있는 남북 모두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지금 남북한 모두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해 상호 믿음을 쌓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후 아시아권 첫 방문지로 한국을 택한 이유 역시 자생적으로 꽃을 피운 한국 천주교에 대한 애정이 큰 몫을 했겠지만 평화의 부재로 고통받아온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평화와 화해를 기원하기 위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어 보인다. 교황은 앞으로 나흘간의 일정을 소화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갈등 해소를 위한 메시지를 수차례 반복하게 될 것이다. 교황의 한마디 한마디는 외신과 SNS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세계에 타전된다. 교황의 메시지는 전세계 10억 천주교도의 수장으로서뿐만 아니라 가장 존경받는 세계 지도자의 외침으로 무게감있게 울려 퍼질 것이다. 종교를 넘어 전세계가 그의 메시지에 주목하는 이유다. 남북한 지도자들뿐 아니라, 동아시아 주요국 지도자들도 교황의 아시아 방문을 계기로 갈등의 파고가 높아지는 동아시아 정세를 되돌아보고 평화롭고 정의로운 인류의 공동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외교가 자국의 이익만을 관철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공동선을 위한 정의로운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교황의 가르침은 작금의 동아시아 정세에 가장 적확한 키워드로 보이기 때문이다.
재위 1년 반동안 파격적인 서민 행보로 `낮은데로 임하는 최고의 종교지도자'로 불려온 교황의 방한은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도 큰 위로와 격려가 되고 있다. 특히 120일이 넘도록 참사의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세월호 유족들에겐 더욱 그러하다. 교황은 이날 공항에 영접나온 세월호 유가족을 소개받자 왼손을 가슴에 얹고 슬픈 표정을 지어보이며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넸다고 한다. 교황은 15일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리는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집전에 앞서서도 참사 생존 학생들과 유족을 만날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 4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한국민들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윤리적,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기 바란다"는 메시지를 발표했던 교황이 참사후 점점 소외되고 심지어 귀찮은 존재로까지 인식되어 가고 있는 희생자 유족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에 정치권은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참사 직후에는 모든 것을 뜯어 고칠듯 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특별법 제정마저 정쟁의 도구화 하고 있는 정치권은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해 그들의 절박한 요구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교황의 메시지에 답을 해야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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