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사회2부 부장 이원규

계속되는 불볕더위가 가히 살인적이다. 비가 오긴 왔다지만 국민이 흘린 눈물만큼도 안 된다. 팔자 좋은 애완견들은 복날임에도 거리로 나와 꼬리 치면서 실실 쪼개며 간다. 필자가 젊은 시절에 살았던 경상도 같은 데는 40도에 육박하는 찜통더위가 왔다고 한다. 75년 만의 최고 더위라니 그곳도 못 가보겠다. 휴가계획은 나왔는데 오가며 겪을 더위 바람에 밖으로 나가자니 겁부터 덜컥 난다. ‘피서’라는 게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겠지만, 집에서 콕 박혀 있는 방콕밖에는 별다른 피서법도 없는 듯싶다.

지금은 들리지는 않는다 보이지도 않는다 고층 아파트 들어선 뒤 깎아내린 산마루 벌건 흙처럼 위산과다 속 쓰린 배를 움켜쥐고 잡석 골라 포도나무 묘목 심었던 묵정밭 봄볕에 냇물 녹아 흐르듯 흔적도 없이 굳센 굴착기 발톱에 밀려나 버렸다 그 험한 세상살이 마디마디마다 날마다 세월마다 촉을 틔우며 황달 들도록 뙤약볕 마다치 않고 일구어낸 그 묵정밭 조금은 멍청하게 멍청하도록 미친 듯이 시절 좋은 세상 말도 아닌 말들이 싫다 하시며 고개 한 번 내밀지 않으신 내 아버지의 일생 묵정밭이 있던 그 자리에 공장이 들어선다며 밭두렁에 괭이를 팽개치셨던 울 아버지. -졸시 〈괭이를 던지다〉 전문

아는 형님이 열 번째 시집 출간을 자축한다며 가까이 사는 아우들 몇을 불러 점심을 샀다. 서울에서 온 경상도 출신 L 시인과 필자만 객지에서 온 셈이다. 하필이면 G 식당은 예전에 우리 집 밭이 있던 바로 옆자리에 있었다. 원동 논과 집 중간이라서 오가며 자주 들렸던 밭이었다. 어느 날이던가. 괭이를 팽개치시던 아버님 생각에 울컥해져 눈물이 핑 돈다. IMF 때부터 어려워져 <은행을 털다>라는 시집을 낼 정도로 언어 유희에도 깊숙이 빠진 적도 있었다. 부산에서는 고향으로 올라간다고 자랑했는데 20년이 넘도록 연락 한 번 주지 못한 난 정말 나쁜 놈임이 틀림없다. 어릴 적에는 착하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는데 부대끼며 살다 보니 천성도 이렇게 변했다.

지금 여의도에서도 일자리 추경안 등을 심의한단다. 먹고 놀아도 세비만큼은 꼬박꼬박 챙기는 금배지 찬 나리들이 모처럼 일을 하긴 할 모양이다. 누굴 위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투태세에 돌입했다는 긴급 속보까지 떴다. 그래 잘한다. 죽이든 살리든 쿨하게 갑론을박이라도 실컷 좀 해봐라. 그냥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처럼 굴지 말고 존재감 좀 보여주시라. 피땀 묻은 세비는 제발 일하는 흉내라도 내고 가져가시라.

엊그제 늦은 밤,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11차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역대 최대인 1060원 오른 시간당 7530원에 극적으로 합의했단다. 그런데도 근로자위원들은 “2~3인의 가족이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며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며, 사용자 측은 “영세기업·소상공인의 경영환경을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며 반발했단다. 혹시나 했던 외국인 노동자와 알바생들은 표정관리에 들어갔고, 역시나 은행 이자도 못 챙긴다는 자영업 사장들은 열불이 치밀게 생겼다.

막상 이따위 시답잖은 얘기까지 내 입으로 내뱉으니 대단히 쑥스럽다. 쿨하게 사는 남자, 나는 그렇게 살고 싶었던 것은 진짜였다. 차라리 가게 문 닫고 월급 받는 일자리 구하는 게 상책이었다. 지금은 제일 좋은 직업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공무원이다. 또 1만2000명을 늘린다니 한 번쯤 도전해 봄 직하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간에 평생 먹고사는 데는 하등의 지장이 없는 철밥통이다. 말 갈 때 소 갈 때 다 쏘다니며 흰소리 치며 살았지만, 세상 물정에는 너무나도 우둔했음을 실감한다. 필자도 그러하지만 반려동물보다도 못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두렵고 창피해서 흐느끼는 이들 또한 수두룩 빡빡하다. 열대야로 밤잠까지 설쳤으면서 뭣이 쿨하다고? 낮잠이나 쿨쿨 잘 걸 이런 글까지 썼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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