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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마을과 홍교아홉 마리의 용과 성질 사나운 호랑이가 한마을에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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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1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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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전남 고흥군, 많은 이야기가 구전되어 내려온다. 그러했기에 조선 광해군 때 유몽인은 이곳에서 많은 설화를 모아 '어우야담'을 쓸수 있었다.

전남 고흥군 동일면 덕흥리 구룡마을에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 앞 바다 시호도에는 무섭고 성질 사나운 호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해 가뭄이 들어 시호도에 물이 바짝 메말랐다.

갈증을 느낀 호랑이는 물을 먹으러 구룡마을로 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아뿔사! 아홉 마리의 용이 허럭하지 않는다. 거대한 체구와 날카로운 발톱, 성난 이빨을 한 호랑이와 아홉 마리의 용이 피터지는 싸움을 하였다. 싸우다가 지치면 주저앉아 5분간 휴식을 취하여 힘이 축적되면 또 싸우기를 했다. 결국 호랑이가 나가 떨어져 죽었다.

그리하여 구룡마을에 평화가 찾아 왔는데....

‘용호상박’ 즉,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싸움을 가리키는 말이다. ‘좌청룡 우백호’처럼 용과 호랑이가 나란히 있으면 어떤 악귀라도 막아준다고 한다. 그러나 서로 대치하여 싸우는 형국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경우엔 어느 한쪽이 죽어야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 구룡 마을에는 9개의 계곡이 있는데 옛날에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했다고 하는 계곡이다. 또한, 이일로 인해 구룡마을을 옛날에는 ‘구룡금’이라고 불려진 적도 있었다고.....

옛날에는 구룡마을에 선박사고가 많아 사람도 많이 죽었던 때가 있었는데 아홉 마리의 용이 호랑이와 싸워 호랑이가 죽은 그 후부터는 바다도 잔잔해져서 선박사고가 없었고 사람도 죽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오늘날 구룡 마을 사람들은 부귀와 풍요를 상징하는 용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살아가고 있다.

호랑이가 목이 말라 구룡마을로 가려다가 아홉 마리의 용과 싸우다 죽었다. 그리하여 그 시호도엔 지금도 물이 귀하다.

그래서 지금 구룡 마을 사람들은 물과 불이 없는 시호도를 ‘원시체험’을 할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시호도는 구룡 마을 앞 무인도 인데. 하늘에서 봤을 때 ‘호랑이가 죽어 있는 모양’으로 보인다고 한다.

한 마을 사람이 말했다. ‘시호도가 호랑이가 살아있는 모양이었으면 해가 되는데, 죽은 모양이라 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120여개의 조각돌로 짜 맞춘 수박다리 홍교가 지금도 변함없이 보존되고 있다.

옛날에 홍수로 고흥읍 시가지에 바닷물이 범람하여 풍양 축두에 정박하고 있던 범선이 바닷물에 밀려 주월산을 넘었다는 신화 같은 설화가 있다. 지금도 고흥과 두원을 사이에 두고 주월산(고흥의 주산)이 우뚝 솟고 있는데 이 때 크나큰 홍수 피해를 입은 고흥 땅은 남쪽 조계산 밑으로 형성되고 있는 등암리를 기점으로 포두면 장수저수지 종점까지 길게 흘러 내렸다는 장수천이 생겼고 그 후 남계천으로 개칭되었다. 당시 홍수로 피해가 극심한 백성들의 건강과 평온을 기원하기 위하여(어느 때 황후인지는 불명) 일국에 황후가 이곳 수덕산에 오셔서 백성의 안녕을 기도했다는 설화가 있다.

수덕산 하능 약수터에서 발원하여 현 홍교다리와 연결하여 오색찬란하게 무지개가 펼쳐져 한때 이 무지개를 타고 선녀가 등천했다는 전설이다. 수덕산 옥녀봉에서 동남으로 내려다보면 북쪽에 고흥의 주산 주월산이 높이 솟아 있고 성인군자가 태어난다는 상서의 봉황새가 복음자리를 잡았다는 봉황산 명산이 남쪽 조계산의 기운을 한 몸에 담고 있는 듯 평화를 상징하면서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의 홍교와 연결된 성지를 응하고 있는 마치산이 앉아 있고 옛날 어느 때고 흥양현에 설치된 현종을 힘차게 쳐서 선정을 베풀었다고 전한다. 옛날이야기는 항상 신비롭다. 어쩌면 진짜 같기도 하고 또 얼토당토 않은 것이 많다.

그러하기에 지금도 옛 이야기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 손녀사이를 끊임없이 넘나들고 있다. 그런 꿈같은 이야기 속에 120여개 조각돌로 짜 맞춘 수박다리 홍교는 분명 건축문화의 신기함을 나타내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이 다리는 수덕산과 마치산에서 기원되어 흐르는 하천의 수구 홍교로서 세종 1441년 약 450여 년 전 가설된 다리였으며 오랜 세월을 지나고 고종 18년에 확장 보수된 다리로 추정된다. 

이 다리는 중앙 상벽에 용두석이 부착되어 있어 다른 지역에 수많은 홍교와 또 다른 특색이 있다. 옛 군주시대에 그 지역에서 정승이 배출되지 않으면 용문석을 부착할 수 없다는 법제가 있어 함부로 용문석을 설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흥 땅에는 풍양면 한동에서(양리) 태생한 유비가 훗날 원나라 외교에 공이 많아 고흥 부원군에 봉해지고 도첨의 정승의 벼슬에 올라 이 용문석을 부착하게 됐다는 것이다. 가만히 살펴 상상해보면 그런 신비스런 일이 있을 법도 하다. 

성안에서는 어느 가난한 선비의 아내가 있었는데 새벽 공기를 마시면서 서문쪽에 있는 옹달샘 물을 떠다 놓고 이 홍교다리에 촛불을 밝히면서 100일 기도를 하여 남군의 무과시에 급제토록 했다는 갸륵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옛날 옛적에 선녀들이 내려와 이 홍교 다리 밑에서 목욕을 하고 수덕산에서 기원한 무지개를 타고 등천하는 곳으로 꿈을 키워 소원 성취했다는 이야기이다. 훗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내의 정성으로 무과에 급제한 충신장군이 동방에 나르는 비장으로 이순신 장군 막하에서 큰 공을 세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음으로 시아버님의 병환을 치유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약 뿌리를 구해 탕재로 만들어 이 홍교다리 밑에서 정성들여 공을 들이고 약 2년간 용봉탕을 봉양한 정성이 헛되지 않고 하늘까지 감동시켜 57세 된 시아버님이 80세까지 건강하게 장수했다는 갸륵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홍교는 해방 후 지방 유형 문화제 제 73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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