玉葉 고현자

 

조금 전에 무엇이든 돈이 된다 싶으면 딸딸이 네발 오토바이에다 애지중지 자식 보듬듯 두꺼운 보자기에 꽁꽁 싸 메고 실어 시장으로 달려가셨다.

오늘은 봄나물을 캐셨나 보다. 냉이를 한 보자기 가져가셨다.

저녁 해가 넘어간 지 오래되었다. 아직은 아침저녁 바람이 차다.

어머니의 밥그릇이 식어 가는데 동구 밖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다. 밤이슬이 차곡차곡 앞마당 흙을 적시고서야 멀리서 아련히 털털거리는 낡은 기계 소리, 어머니의 네 발짜리 자가용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점점 커지는 소리는 드디어 우리 집 앞마당에 도착하셨다.

 "밥 먹었나?" 하시며 미소 지으시는 주름진 얼굴에는 다 팔고 왔다는 행복의 꽃이 만발하셨다. 그렇게 오 남매를 키워내신 우리 어머니, 새로 데워진 국물에 밥 한술 말아 드시고 안도의 한숨에 고단이 잠드셨다. 평생을 자식을 위해 살아오신 숨소리를 같이 하며 나란히 잠자리에 누우니 가슴이 메어 온다. 

 

그래도 지금은 좀 낳은 편이다. 그 옛날에는 머리에 이고 등에 메고 가냘픈 두 다리로 십 리 길 장터를 내 집 드나들듯 하셨다. 팔십 평생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논밭 일 다 해내시고 지금껏 과수 농사까지 지으시며 장군의 힘으로 곧게 서 계신 엄마의 두 다리가 뼈만 앙상하여도 우리네 오 남매의 버팀목이시다

 

내 마음 죄스러워 얼굴을 들 수도 없으리만큼 쇠약하고 작아진 체구에 약 봉지를 끼고 사시면서도 넓고 깊으신 가슴을 언제나 아낌없이 펼쳐 보이시며 계절이 바뀌고 찬 서리가 내려도 따스한 햇볕 되어 모든 것을 포근히 감싸 안는 엄마다.

달빛이 바람에 흔들리고 해가 구름에 가려져도 변함없이 그 빛을 발하고 있는 것처럼 내 곁에서 굽어살피고 계신다는 걸 미처 몰랐습니다.

물거품처럼 덧없는 내 욕심만을 채우기에 바빠 가슴 아프게 했던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 가슴 아픕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실타래 같이 엉키기만 하던 고빗사위 언제나 빛과 희망을 주시던 당신을 세상 풍파 어두운 긴 터널을 쉼 없이 걸어 찬바람 비탈길을 지나 보고서야 노파심을 읽었습니다.

노심초사 이 못난 자식 위해 밤마다 정한수 곱게 올려놓으시고 모든 고통 불행 당신께 다 달라고 꽁꽁 언 두 손을 모아 비비시며

이제나저제나 달력에 체크 해 가면서 자식 올 날 만 기다리시며 동네 어귀 갈 기슭 뿌연 먼지 속 자동차 소리만 나도 굽은 허리 펴시며 이마에 땀 훔치시고, 행여 하는 마음에 돌아다보시는 당신을

이제 내 머리 희끗희끗 서리 내리고서야 당신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휘어지고 곧아 펴지지도 않는 두 손을 추운 날 시린 물 마를 날 없이 자식 위해 마다치 않고 맛있는 밥을 지으시는 마법의 손을 가지신 어머니,

희어진 머리칼 아래로 굵게 파인 인자한 주름살, 정갈한 옷 매무새, 소담스런 자태, 눈이 부시도록 찬란하고 위대한 우리 엄마.

여가만 있으시면 서울 가는 재넘이 고속버스가 지나가는 여울가녘 계시던 당신이 해지게 어둠이 내리니 목이 멥니다.

평생 우리 오 남매의 가슴을 다 합쳐도 태산과 같이 옆에서 묵묵히 지켜만 보아 주시던 당신의 발뒤꿈치라도 따를 수 있을까요

 얼마나 고달팠을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못된 성질머리 하나 때문 모든 걸 퍼붓기만 하며 살아온 나에게 싫은 소리 한번 안 하고 무엇 하나 더 주시기 위해 일만 하시며 머리칼이 하얘지도록 철들지 않은 나를 사랑으로 끌어안으시고 위로하고 다독이셨다.

나는 지금까지도 부모님을 의지하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살고 있었다.

투정부리고 짜증 부리고 화도 내 가면서 말이다.

나도 자식에 며느리 손자까지 있는데 언제나 부모님 앞에서는 어린애였다. 

생각과는 달리 또 싫은 소리를 하고 말았다.

행복의 꽃 만발이신 어머니 얼굴에다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좋게 “따뜻한 데서 쉬지 무슨 돈을 번다고 그러세요. "그냥 “편히 쉬세요”. 하면 될 걸 "왜, 사서 고생을 하고는 만날 아프다고 하세요."  화를 내고 말았다.

이제, 내 나이 오십 중반 또 오늘 하루도 저물어 가고 있다. 지나온 세월 생각해 보니 가난을 주기도 하고, 고통을 주고 난 후에는 즐거움을 맛보게도 했다. 아픔을 주고 난 후에는 행복을 선물하기도 했었다.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 그러나 그 모두가 욕망, 아집,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너무나 급히 시간을 가져다 썼던 건 아닌가 싶다.

이제 봄도 절정에 이르고 있다. 깨끗한 하늘에선 사뿐히 산책하는 눈이 부시도록 예쁜 구름의 선율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이따금 불어주는 바람도 저 너머에서부터 여름의 냄새를 안고 와 마음을 묘하게 뒤흔들어 놓기도 한다.

그래, 지금부터라도 마음공부도 더 해 가면서 생활의 여유도 조금은 가져야 할 것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행도 엄마와 함께하면서 글도 마음껏 쓰고 내 손으로 따듯한 밥도 지어 드리면서 후회는 하지 않는 시간을 갖도록 해야겠다.

어쩜 현실에 너무 얽매여 살아서 그런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요즈음 조금씩 귀 촌 준비를 해 가고 있다.

돈이야 그저 있는 데로만 쓰면 되고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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