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앓아 누우신 어머니, 이 고깃국을 드신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홍성 결성면 교향리에는 서지골이란 작은 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옛날부터 한 효자의 통곡이 서려 있는 국고개란 고개가 자리하고 있다. 

아주 먼 옛날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접어드는 때였다. 나뭇꾼 돌이는 나무 지게를 옆에 세워두고 주막집 추녀밑 따뜻한 곳에서 자리잡고는 햇볕 사냥에 여념이 없었다. 

돌이는 햇볕 사냥에도 진저리가 났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뱃속에서 꼬로록 텅빈 독이 울리듯 괴성이 들려 왔다. 돌이는 허리띠를 졸라매고는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이상하게도 많은 나뭇짐이 줄을 지어 서 있다. 그것을 보자 돌이의 마음은 한결 급해졌다, 주막집 주모를 찾아 보았지만 주모는 돌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바삐 몸을 움직일 뿐이었다. 이곳 저곳에서 주모를 부르는 소리만 크게 들려왔다. 
해 지기 전에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앓아 누우신 어머니께서 얼마나 기다리고 계실까? 
돌이는 마침내 몸을 움직여 나뭇지게에 가까이 다가섰다, 지게를 짊어지면서 아랫배에 힘을 주었더니 꼬로록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돌이는 주막의 마당으로 성큼 들어섰다. 손님들이 다 나간 다음에 나뭇짐을 팔다가는 해를 넘기고 말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손님 사이를 비집고 마당에 들어서자, 부산하게 상을 들고 움직이던 주모가 그제서야 아는 체를 했다.

"아이구, 총각. 이제 왔구만! 나무를 가져왔으면 곧 바로 말할 것이지. 우선 나뭇짐을 저쪽에 부리고 나서 내 일 좀 도와줘요. 왠 손님이 이리도 한꺼번에 몰려드는지~"

주모는 줄거운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더욱 바삐 움직였다. 돌이도 곧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려놓은 나무를 다시 들어 차곡차곡 쌓아올리고 두 팔 아름 가득 안고 부엌으로 향하였다. 

그리고는 주모가 하라는 대로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의 불꽃에 몸을 녹이면서도 돌이의 마음은 급했다. 매일 되풀이로 하는 일이지만 오늘은 일을 도와 줄 마음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평소 보다 훨씬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솥에서는 고깃국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주모가 국을 푸기 위하여 솥뚜껑을 열어 젖힐 때마다 고깃국 냄새는 코를 찌르고, 그때마다 뱃속에서는 꼬로록 빈 속을 울리는 소리가 더욱 크게 퍼졌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처마끝에 내렸던 햇살도 사라지고 저만큼에서 어둠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제서야 한가해졌는지 주모가 부뚜막에 덥썩 주저앉았다. 

"이런, 내 정신 좀 봐! 총각 시장하지 않어? "

주모는 일어서자 마자 곧 솥뚜껑을 열었다. 뽀오얀 김이 확 피어올랐다. 주모는 국물을 몇 바퀴 휘 젖더니, 국자를 들어 뚝배기에 국물을 퍼 담았다. 작은 소반 하나를 가져다가 국그릇을 올려 놓고는 이내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하나 건져 올려 싹뚝 잘라 국물 속에 집어 넣었다. 밥을 듬뿍 퍼서 한 사발 디밀었다. 

그러나 그 순간 돌이는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침이 꿀꺽 넘어갔지만, 갑자기 떠오르는 어머니의 모습에 도저히 수저를 들 수가 없었다. 앓아 누우신 어머니 얼마나 날 기다리고 계실까? 이 고깃국을 보신다면 얼마나 입맛을 다실 것인가? 이런 저런 생각에 돌이는 상을 밀어냈다. 

"아니 총각. 왜 그래? 맛이 없어서 그래? " 돌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자 주모는 빙그레 웃음을 머금고는 허리춤에서 엽전을 꺼내어 돌이에게 내밀었다. 

"나뭇값 때문이었지? 자 받아. 그리고 내일부터는 총각 나무는 내가 모조리 살 테니까, 두 짐이고 석 짐이고 얼마든지 가지고 와, 알았지?"

"그게 아니어요, 아주머니!" "그럼, 왜 그래? " "이 국밥을 어머님께 갖다 드리면 안 될까요? "

"오라, 어머니 때문이었군! 진작 말을 할 것이지. 걱정 말고 이 국밥을 어서 먹어요. 내 집에 갈 때 뜨거운 국 한 그릇 가져가게 해 줄테니. 총각, 참으로 효자는 효자야, 과연 소문난 효자야! "

친절한 주모의 목소리를 들으며 돌이는 단숨에 국밥 한 그릇을 비웠다. 굳이 한 그릇 더 먹고 가라는 주모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돌이는 주모가 내미는 엽전과 국그릇을 받아 들고는 쏜살같이 주막을 빠져 나왔다. 

돌이는 뛸 듯이 집으로 향하였다. 그리고는 머릿속으로 국밥을 맛있게 드시면서, 돌이가 내미는 엽전을 만지작거리는 어머니의 기쁜 얼굴 모습을 떠올렸다. 

다음날부터 돌이는 더욱 더 많은 나무를 해서 주막집에 팔았다. 어느날은 두 짐, 어느날은 세 짐의 나무를 주막집에 팔았다. 그때마다 주모는 항상 웃으면서 나무를 사주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나뭇짐을 짊어지고 막 사립문을 나서는데 어머니의 가냘픈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려왔다.

개고기가 먹고 싶으니 돌아올때 보신탕을 사오라는 것이었다.
 
그날도 돌이는 주막에 들려 나무를 팔고 나서 주모의 일을 도와드렸다. 겨울에 들어서인지  어느덧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돌이는 마침내 고개에 이르렀다.

발바닥이 미끄러워졌다. 조심조심 고개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악 고갯마루에 오르는가 싶더니 돌이는 그만 몸의 중심을 잃고 말았다. 넘어지는 순간 돌이는 국그릇을 머리 위로 번쩍 들었다. 보신탕이 머리에서 부터 부어져 내렸다. 온몸에 냉기가 돌았다. 온몸이 으스스 떨렸다. 

그러나 돌이의 두 눈에서는 두 줄기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차츰 울음소리를 흘러내리는가 했더니 통곡으로 변했다. 고갯마루를 두들기며 마구 울어제꼈다. 

사이사이 눈이 내리고, 옷섶에서 국물이 얼어 고드름이 매달리기 시작했지만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그때였다. 눈 속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젊은이가 미련도 하구나! 손에 든 엽전으로 다시 보신탕을 사면 될 것이 아니가? 

그렇다. 그러면 된다! 돌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구 뛰었다. 그리곤 보신탕을 다시 사서 어머님께 드렸다. 

그후 어머니의 병은 신기하게 나아, 돌이는 오랫동안 어머니를 모시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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