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太白이 둥근달을 노래한곳이 바로 西湖

글 章石 徐明澤 

西湖는 항주 서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白樂天·蘇東坡등 수많은 문장가들이 시를 읊었던 곳으로 중국 10대 명소중의 하나로 송나라 때 만든 인공호수이다. 3개의 섬(소영주, 호심정, 완공돈)이 있고, 너무 넓어 바다와 같은 서호는 중국의 4대 미인인 西施가 태어난 곳으로서 전해오는 얘기로 중국 춘추 시대 오나라의 왕 夫差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땔나무 위에서 잠을 자며 월나라의 왕 句踐에게 복수를 맹세해 결국 월나라에 승리를 했다. 그러나 부차에게 패배한 월나라 왕 구천이 쓸개를 씹으며 미인계를 이용 아름다운 西施를 吳王 부차에게 보냈는데 부차는 서시의 미모에 빠져 결국 오나라는 망하게 된다. 여기서 ‘땔나무 위에서 자고 쓸개를 먹으며 원수를 갚는다’ 라는 臥薪嘗膽의 고사가 나왔으며, 李太白이 둥근달을 노래한곳이 바로 西湖이다. 이태백은 ‘화창한 날의 서호는 서시의 화장한 모습이고, 안개 낀 날의 서호는 서시가 화장하지 않은 모습’이라며 서호를 절세미인에 견주며 아름다움을 극찬하였다 한다.

이러한 선경을 어찌 지나치리오! 나는 다시 西湖遊覽 한수를 읊조렸다.

廣闊西湖霧露盈 드넓은 서호에 안개는 자욱한데

片舟賞客自嘆聲 일엽편주 구경꾼들 탄성이 절로 나네.

眼前別界心身樂 눈앞의 별계에 심신이 즐거우니

昔日蘇翁似是情 그 옛날 소동파도 이 마음 같았으리.

저녁 식사 후 吴山 城隍閣으로 향했다. 城隍山 이라고도 불리는 吴山 정상에 있는 城隍閣은 황악루, 등왕각, 악양루와 더불어 중국 강남의 4대 누각중의 하나로 남송과 원나라 때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41.6m 높이의 7층의 성황각 4층에는 전망대가 있어 북으로는 서호, 동으로는 항주 시내, 남으로는 전단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1층 전시관에는 남송시대의 생활풍속, 2층 전시관에는 소동파, 백거이 등 항주출신의 역사적인 인물 28명의 조각상을 비롯하여 항주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묘사한 조각들이 있다.

성황각을 둘러보고 걸어서 淸河坊 옛 거리에 이르니 남송의 옛 도읍지에 온 것 인양 당시 생활 모습을 그대로 엿볼 수 있었다.

淸河坊은 항주가 남송의 도읍지였을 때 河坊街(하방거리)를 재현한 곳으로 오랜 역사를 지닌 100여개의 상점들이 즐비하였다. 차, 비단, 골동품 등의 가게와 약방, 서점 등의 많은 상점들이 옛날의 번화했던 항주의 모습을 약 1.5km정도 되는 직선거리의 양쪽에 옛날의 건축물과 거리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역사 문화의 거리이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약국 湖慶余堂의 화려한 모습과 서점 榮寶齋, 왕서기 부채전문점등 먹거리 골목도 있어 양꼬치 ․ 참새 ․ 비둘기 ․ 노루 ․ 개구리 ․ 메추리 ․ 고기완자 ․ 게튀김 ․ 거지닭요리 등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저녁식사에서도 거지닭 요리를 즐길 수 있었는데, 이 요리는 청나라 광희제가 平民차림으로 강남지역을 시찰할 때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풍겨와 가보니 거지가 닭을 먹고 있더라. 마침 시장한 터에 얻어먹었는데 보통 맛하고는 달라 그 조리법을 물으니 ‘통닭을 연잎으로 둘둘 말고 진흙으로 쌓아서 불에 구운 것’이라 하였다.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궁으로 돌아온 광희제는 그대로 만들어 보았지만 그때 그 맛을 얻지 못해 강남의 거지를 궁으로 데려와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여행지에서의 마지막 밤을 초대 善墨會長을 지낸 金鍾燮 회원이 자리를 마련해준 주점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새벽까지 旅興의 끝자락을 장식했다. 실로 가족 같은 끈끈한 정이 넘쳐나는 진풍경이었으니 어디서 이러한 인연을 찾을 수 있으리!

주연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柏民박사가 언제 지었는지 紹興有感으로 오언절구 한수를 읊으며 시흥을 북돋워 주었다.

所聞訪蘭亭 소문으로 듣던 난정을 찾으니

書香滿石銘 서향은 돌에 가득 새겨있네

觴流情不勝 유상곡수의 정 이길 수 없으니

盡日酌無停 해가 다하도록 술잔 멈출 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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