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때부터 털빛이 누리끼리해 누렁이라고 부르는 개가 있다. 사냥개와 잡종인데도 사람들은 진돗개로 알아준다. 누렁이는 대부분 목줄에 매인 채 파란 대문 앞을 지키는 수문장이다. 행여 낯선 사람이라도 얼씬거리면 금방이라도 물어뜯을 듯 오만상을 찡그리며 날카로운 이빨을 최대한 드러낸다. 나름대로 앙칼지게 짖어대는 소리는 멍, 멍 혹은 깨갱 갱으로 매우 단순하고 밥 챙겨주는 주인 말 이외는 두들겨 맞아도 절대로 듣지 않는 고집불통이다.

깔끔하기로는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 제집 주변에서는 똥오줌까지 철저히 가려 사나흘도 참는 놈이다. 이른 새벽에 필자가 다가서면 꼬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종종걸음으로 야단법석을 떨며 뒤가 마렵다는 긴급신호를 보낸다. 다가가서 목줄을 풀어주면 남이 보지 않는 으슥한 곳으로 급히 뛰어가 해결하고는 원위치로 되돌아와 태연하게 제자리를 철통같이 지킨다.

별꼴 다 보겠다. 아침 7시경 개집을 들여다봤더니, 간밤에 누렁이가 또 큰일을 해냈다. 날씨가 쌀쌀하던 늦가을부터 비싼 사료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빨빨거리고 밖으로 쏘다니더니, 오방색 새끼들을 뽑았다. 깜장, 하양, 누런 놈은 물론 푸른, 붉은빛 얼루기로 암컷 두 마리와 수컷 세 마리가 꼬물거린다. 이번이 세 배째이다. 첫 배는 3마리, 두 번째에는 8마리까지도 낳았던 이력도 있다. 찬바람이 불면 문 앞을 가로막고 제 새끼들에게 젖을 물린 모성애가 볼수록 가상타.

강원도 산속에서 세상과 담쌓고 살다가 ‘글만 써서 먹고 살 수 있다’는 ‘하지만’ 씨의 발림에 혹해서 급거 하산했다. 세속으로 돌아왔더니 가관이다. 부지런하면 먹을 걱정 없던 산속 생활과는 영 딴판이다. 아뿔싸! 귀가 여려 남에 솔깃했던 게 착각이었다. 대통령이라면 몰라도 내 삶을 걱정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씨는 며칠 머물지 않고 업종을 바꾸겠다면서 발을 뺐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도 깊어갈 무렵이었다. 옥상으로 올라간 싸부와 사주가 사생결단이라도 낼 듯한 언쟁으로 대판 붙었다. 필자가 취재한 선감도 기사가 실마리를 제공한 셈이다. 칼자루를 쥔 자와 칼날을 움켜쥔 자의 승부야 뻔했다. 핏대가 오른 싸부가 주섬주섬 시디(CD, CJ가 아님)와 노트북을 챙겨 가방에 담았다. 오라는 데 없어도 갈 곳은 많다면서 손을 털고 휘익 나가버렸다.

빈자리는 새 사람으로 금세 채워졌다. 비좁은 동네이다 보니 예전부터 안면도 있던 연배이다. 지역신문이라는 게 열심히 써도 표시가 나질 않는다. 더구나 주간지라서 시사성에서부터 일간지에 뒤질 수밖에 없다. 뒷북치는 뉴스를 올려봤댔자 옛날 옛적 이야기라서 눈여겨보는 이도 드물었다. 연말 그리고 X-마스가 다가올 무렵이었다. 서너 차례 반복되다가 끝낼 줄 알았던 ‘무당’ 이야기는 그칠 줄 모른다.

그만둬야 할 차례가 온 듯싶어 사주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진즉 결단내야 했는데 마땅한 핑곗거리를 찾지 못했던 차였다. ‘왜냐’고 물어 ‘난 무당이 싫다’고 짧게 답을 썼다. 무엇보다도 인간관계가 중요하다고 했지만, 가짜들이 설레발치는 추잡한 세상은 꼴 보기 싫었다. 요즘 성공했다는 고위층은 예전처럼 모범적이고 훌륭하게 보이질 않는다. 개도 안 먹는 걸 마구 집어삼켰다가 발각되어 검찰청사 앞에서 은팔찌를 낀 추레한 모습을 너무 자주 보여준 탓이다. 삼겹살보다 더 두꺼운 팔겹살로 안면을 깐 철면피들을 보면 구역질이 거꾸로 치밀어 올라온다.

병신년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정유년 붉은 닭이 대기 중이다. 영감·나리들은 측량기사처럼 뭘 그리 꼼꼼하게 재며 눈치코치 보는 개처럼 무슨 냄새를 그렇게 맡아대는지 모르겠다. 큰 도둑 앞에서는 꼬리 내리면서 진돗개 행세하는 잡종의 근성이 몸에 뱄다. 참다못한 국민이 광장으로 나가서 촛불을 밝혔다. 그런데도 ‘시크릿 가든’은 불을 끄고 박절하게 외면했다.

믿었던 대단한 민국, 어이타 영혼이 뒤바뀐 대통령이 불쌍타, 고생들 많았다면서 서로서로 위로할 때, 촛불에 비친 우리 얼굴 우리끼리 마주 보니 마음이 울컥해져 눈물까지 핑 돈다. 축제가 끝난 후 때맞춰 ‘가라, 가라’ 외치던 목쉰 우리를 대신하는 가랑비도 하늘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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