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무 기자
정연무 기자

[일간경기=정연무 기자] 거의 430여 년 전인 조선 선조 때 일본에 다녀온 통신사의 보고에서 정사 황윤길은“반드시 일본이 침략할 것”, 부사인 김성일은 “절대로 일본이 침략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맞섰다.

‘당쟁’ 때문이었다.

불과 2년 후 조선은 별다른 대비책도 세우지 못한 채 7년여간 산하를 유린당했다. 잘 알려진 ‘임진왜란’이다.“전쟁 중에 붕쟁이 계속되었고, 전쟁 후에는 같은 다른 당파와는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았다. 다른 당파의 길흉사에 가면 수군거리고, 통혼하면 무리 지어 배척했다. 정치가 생활 세계까지 완전히 점령했다. 당파는 자손 대대로 세습되고, 다른 당파를 서로 원수처럼 죽이니 조정에 피가 낭자하고 민생은 뒷전이 되었다. 율곡이 피를 토하며 ‘만언소(萬言疏)’를 올렸으나, 오히려 당쟁에 치어 요절했다.” 실학자 이익이 남긴 ‘붕쟁으로 뒤덮인 조선’의 살벌한 풍경이다.

筆者가 굳이 이 치욕적인 역사를 꺼낸 것은 작금의 대한민국이 갈등과 대립이 정치를 통해 해소되기는커녕 피비린내 나는 ’조선조 당쟁‘이 되풀이 되고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1월28일 대장동·위례 개발 특혜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지난 10일 성남FC 후원금 의혹 관련 조사 때 민주당 의원 40여 명을 몰고 출석했던 이 대표는 이번에도 민주당 의원 20여 명을 방패삼았고, 국힘당 의원들은 ’이 대표의 범죄 의혹‘을 일제히 거론했다.

서울 도심에서는 며칠째 이어진 혹한 속에서도 두 동강 난 민심이 맞부딪쳤다. 이 대표가 출석한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지지 단체와 규탄 단체가 맞불 집회를 열었고, 광화문 세종로는 보수, 진보 단체 간 정치적 갈등으로 수만명에 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며 극심한 혼란이 빚어졌다.

조국 사태 때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나뉘어 벌어졌던 끝판 대결이 재현되면서 대립과 분열의 정치가 어느새 이 땅의 필부필부(匹夫匹婦)를 부추겨 진영 논리에 따라 서로 죽이고 죽이는 진흙탕 싸움을 만든 것이다.

아니, 정쟁이나 파벌 문제에서 더 나아가 정치가 아예 실종에까지 이르게 됐다는 말이 맞는 해석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정치판은 ‘동지와 적’이라는 이분법적 카르텔(Kartell)이 여전히 견고하다. 
정치가 사회를 안정시키는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사회를 갈갈이 분열시키고 있다.

지역, 세대. 성별 등으로 끝없는 분열과 갈등이 조장, 강요되면서 국민의 절반가량은 이미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과 ‘식사 또는 술자리가 불편하다.

그리고, 70%가량의 국민은 정치적 입장, 이념 갈등이 커서 사회가 불안하거나 위험한 수준이라 여기게 됐다.

여기에 더해, 지지 정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싫어하고 불신하고, 혐오하고 정책 평가조차 극과 극이다.

내편 위해 상대를 비난하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희망을 키우지 못하고, 어느 날 돌아보면 허망한 그늘에 남겨진 국민만 희생자다.

결국, 그 찢어진 상처와 혼란을 먹이로 기생하는 특정 세력 외에는 대부분이 이 땅에서 희생자가 되는 세태(世態)가 만들어졌다. 

“올바름과 실천적 지혜를 지닌 사람이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 공자의 “정치는 사회적 덕이 구현되는 덕치(德治)”라는 가르침조차 공염불이다.

이쯤되면, ’조선조 당쟁 DNA‘가 고스란히 대한민국에 내려꽂힌 것이 아닌가 싶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나라를 두루 다스리는 일이다.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협치’가 중요하다. 따라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타협하며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 실행하는 것이 정치의 핵심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여전히 조선 당쟁의 습속(習俗)대로 상대를 적폐로 찍어 마녀사냥하고, 살아남은 자들이 보복하는 복수정치를 반복하면서 파당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런 정치가 이 땅에서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으니, 비극 중에서도 엄청난 비극이다.

누구를 탓해야 하는지도,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한국 정치의 한계, 무책임한 정치꾼들의 탐욕, 그 속에서 피 울음을 삼키고 있는 이웃들의 모습이 영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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