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의 금융그룹인 KB금융에서 벌어진 권력투쟁이 최악의 막장드라마로 치닫고 있다.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싸고 싸우다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의 '예상 밖 경징계'로 기사회생한 KB금융지주의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또다시 '너 죽고 나 죽자'식으로 싸우다 최수현 금감원장으로부터 중징계를 통보받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두 사람은 경징계 결정이 나온 뒤 화해를 하겠다며 임직원들과 함께 템플 스테이를 떠났으나 사소한 의전상의 문제로 다툼을 벌였고, 이건호 행장은 도중에 자리를 이탈했다. 

이 행장은 회장 측 임원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 전면전을 선포했다. 

징계절차가 채 끝나기도 전에 죽기 살기로 싸우는 두 사람을 본 최수현 금감원장은 금감원 제재심의위 결정을 뒤집어 중징계를 결정했다. 

금감원장이 협의체인 제재심의위 결정의 수용을 거부하고 중징계로 상향한 것도 처음이지만 금융지주회사 회장과 행장이 한꺼번에 중징계 처분을 받은 것 역시 한국 금융사를 새로 쓴 사건이다. 

감사와 이사, 행장, 회장이 편을 갈라 싸우는 KB금융의 권력다툼은 흉기만 들지 않았을 뿐 조폭들의 길거리 난투극과 다를 바 없었다. 

여기에 치안유지를 총책임지는 감독당국의 총수까지 '직'을 걸고 뛰어든 상황이다. 한국 금융의 후진성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부끄러운 사건이지만 그래도 결말은 확실하게 지어야 한다.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금감원 중징계 결정을 받아들여 즉각 사의를 표명한 반면, 임영록 회장은 사퇴를 거부했다.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임 회장에 대한 징계는 이달 말쯤 금융위원회에서 확정되는데 그 과정에서 징계 번복의 부당함을 적극적으로 소명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종 징계가 확정된 뒤에도 임 회장이 가처분 신청 등 법적 구제에 나서면, KB금융 내분은 임 회장과 금감원의 싸움으로 확전된다. 

어떤 경우든 만만치 않은 진통이 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KB금융은 멍들고 병들게 될 것이다. 

이번 KB금융 사태를 보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300조 원 가까운 자산을 관리하는 조직에 책임지는 자세를 가진 경영자가 없다는 점이었다. 회장과 행장을 비롯해 80여 명의 임직원이 당국의 징계를 받는 일이 벌어졌는데도 '내 탓이오'하는 사람은 없었다. 

5천억 원대의 도쿄지점 부실대출, 카드사 정보유출 사건, 주전산기 교체 논란, 채권 위조 횡령 등 온갖 사건과 사고가 연이어 터졌지만 책임을 통감한다는 경영자는 없었다. 그나마 이건호 행장이 막판 자진 사퇴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였다고 하겠다. 

물론 임영록 회장으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쿄지점 부실 대출 등 일부 사건은 어윤대 회장 시절 일어났다. 다른 일들도 법률적으로 책임을 묻기 어려운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임 회장은 어 회장 시절에도 지주회사 사장으로서 경영에 광범위한 책임을 지는 자리에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인자로서 어윤대 회장의 자의적 경영을 견제하지 못한 데 대한 도의적 책임은 있을 것이다. 또 앞으로 있을 당국과의 갈등은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KB금융 사태의 본질은 관치금융이다. 

2008년 9월 금융지주 체제가 출범한 이후 1대 황영기 회장부터 2대 어윤대 회장, 3대 임영록 회장에 이르기까지 회장과 행장은 늘 갈등했고 금융당국의 제재가 잇따랐다. 

낙하산 인사들이 권력다툼을 벌이는 사이에 순익 1위의 '리딩뱅크'였던 국민은행은 순익 최하위의 '꼴찌뱅크'가 됐다. 이제 관치금융의 끝을 내고 금융전문가에게 KB금융을 돌려줘야 한다. 

우리금융지주에서와 같이 회장과 행장을 겸직시켜 분란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금감원과 엇박자로 움직이는 제재심의위 문제도 드러났다. 감독시스템을 새롭게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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