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여직원도 폭행…'불문경고'로 넘어가

인천의 한 공립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 A(27·여)씨는 올해 6월 수업이 끝난 뒤 교실에서 남은 업무를 하다가 교내 메신저로 연락을 받았다.

교감 B씨의 호출이었다. 업무로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잠깐 2층 교무실로 내려오라고 했다.

10분 뒤 A씨가 인사를 하며 교무실에 들어서자 교감은 다짜고짜 "000 선생님. 저기 과녁에 좀 가봐"라며 손짓했다.

교감의 손끝이 가리킨 캐비닛에는 올림픽 때나 TV로 본 양궁 과녁이 A4용지에 출력된 상태로 붙어 있었고, 그의 손에는 체험용 활시위와 화살이 들려있었다.

화살은 40㎝가량 길이로 대나무 재질이었으며 앞쪽에는 흡착 고무가 붙어 있었다. 얼마 전 5학년 학생들이 서울의 한 선사유적지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사용하고 가져온 것이었다.

당황한 A씨는 화살이 날아올 과녁 앞에 서면 위험하다고 생각했지만, 상사인 교감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다.

과녁의 점수를 봐달라는 거로 생각하며 얼굴 높이인 과녁 옆쪽으로 다가서자 B씨는 "아니 그 과녁에 서 있어 보라고"라며 다그쳤다. "하하하" 교감은 크게 웃었다.

A씨도 최대한 당황한 모습을 감추려고 의식적으로 몇 차례 억지웃음을 보였고, 교감은 자신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 A씨에게 "(화살이) 오면 피하면 되는데…. 야 거기 있다가 맞는다. 이거 아무 데나 막 튀어"라고 겁을 줬다.

어찌할 바를 몰라 우물쭈물하는 찰나. 교감의 손에서 떠난 화살은 A씨의 머리 옆을 지나 종이 과녁에 박혔다. 머리에서 불과 20㎝ 정도 떨어진 지점이었다.

흡착 고무가 종이 과녁에 달라붙으며 '퍽'하는 큰 소리가 났다. 당시 교무실에는 교직원 2명이 함께 있었다.

심한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낀 A씨는 그날 이후 정신과 병원에서 급성 스트레스장애로 전치 4주 진단을 받았고, 당시 충격으로 속이 울렁거리고 구토하는 증세가 계속돼 최근까지도 치료를 받고 있다. 교사 승급을 위한 자격연수도 받을 수 없었다.

A씨는 22일 "당시 교감 선생님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지만, 교실로 올라와서 펑펑 울었다"며 "마치 사냥꾼이 도망치는 동물을 보고 웃는 느낌이 들었다"고 울먹였다.

그는 "이후 심리적으로 불안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리는 버릇이 생겼다"며 "퇴근하고 혼자 사는 집에 가 극단적인 생각을 한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A씨는 평소 B씨가 인격을 모독하고 교사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막말도 자주 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A씨의 주장이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교무실에서 여교사를 과녁에 세워두고 활을 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한 언론지와의 통화에서 "당일 교사 성과상여금과 관련한 공문을 전달하기 위해 해당 교사를 교무실로 부른 것은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활은 2학기 때 진행할 아이들 전래놀이 활동에 쓰려고 갖고 온 것"이라며 "안전성을 시험하기 위해 혼자 있을 때 교무실에서 쏜 적은 있지만, 누군가를 세워 놓고 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이들이 교무실에 함께 있을 당시 나눈 대화 녹취에는 과녁 앞에 서보라고 이야기하는 B씨의 음성이 모두 담겼다. 또 실제로 화살이 과녁에 박혀 '퍽'하는 큰 소음도 녹음됐다.

변호사를 선임한 A씨는 B씨에 대해 인격권 침해 등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그는 B씨의 공개 사과뿐 아니라 인천시교육청의 철저한 조사 후 징계 등을 요구했다. 인권위는 조사에 착수해 B씨 측에 해명 자료를 요구한 상태다.

A씨는 "B씨는 교감과 평교사라는 상하관계를 이용해 교육의 현장인 학교에서 인권을 침해하는 갑질을 했다"며 "동료 교사이자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되는 대상으로 여긴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B씨는 과거 행정실 여직원을 폭행한 전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당시 징계위원회를 연 교육 당국은 법률상 징계 대신 경고 조치만 하고 넘어갔다.

25일 교육계에 따르면 인천 모 초등학교 교감 B(52)씨는 2005년 4월 다른 초등학교에서 부장교사로 근무할 당시 행정실장 B(여·당시 8급)씨와 말다툼을 벌였다.

둘은 업무비의 회계 처리 문제를 두고 마찰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로 언성이 높아진 가운데 B씨가 C씨에게 "야"라고 소리치며 반말했고, C씨가 "왜 반말을 하느냐"며 항의하자 그는 손으로 B씨의 목을 세게 잡고 복사기 뒤쪽으로 밀쳤다.

C씨는 B씨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한 뒤 한동안 육체·정신적으로 후유증에 시달렸다.

B씨는 당일 외에도 수차례 C씨의 직위를 비하하거나 협박하는 발언을 자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건이 알려진 뒤 인천시교육청 행정직원연합회와 인천교육행정연구회 등은 B씨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단체는 성명을 통해 "열악한 환경에서 혼자 근무하는 행정실 여직원을 폭행했다"며 "고귀한 인격을 유린했고 장기간에 걸쳐 행정직 전체를 비하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인천시교육청 행정직원연합회는 또 당시 성명서에서 "그는 C씨에게 '직원도 없는데 무슨 행정실장이야. 8급 단지 얼마나 됐어'라거나 '너 앞으로 조심해. 내가 예의주시할 테니까'라고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인천시교육청은 행정직원연합회의 청구에 따라 B씨에 대해 감사를 하고도 엄중한 징계 대신 '불문경고'를 하는 데 그쳤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당시 해당 지역교육장이 감봉이나 견책과 같은 경징계를 요구했고, 시 교육청은 불문경고를 했다"며 "과거에 받은 표창 공적이 고려됐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가 따로 고소하지 않아 경찰 조사는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공무원법에 명시된 징계는 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 등이다. 법률상의 징계 처분이 아닌 불문경고는 견책에 해당하는 비위에 대해 징계위원회가 감경을 의결해 경고만 하는 조치다.

B씨는 한 언론지와의 통화에서 "당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맞다"면서도 "수학여행 답사를 다녀온 후 언쟁이 있었으나 사적인 일로 벌어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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