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암 이원규의 된걸음 세상] 밥 먹고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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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암 이원규의 된걸음 세상] 밥 먹고 합시다
  • 일간경기
  • 승인 2016.09.25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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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는 대로 돈이 되는 ‘돈내기’라서 아버님은 식솔들 먹여 살리겠다고 힘써 벽돌을 찍으셨다. 비교하기 뭣하지만, 일구 아저씨가 400장이면 아버지는 900장은 찍어야 집에 오셨다. 우리 형제들도 학교를 파하면 곧장 현장으로 달려가 거들었다. 물을 뿌린 만큼 벽돌도 야물게 양생이 돼 잘 팔려나갔다. 그날은 사흘 동안의 황금연휴 중이라서 동생들과 당번을 바꿔 이틀 연이틀 간 물을 주었더니 손목이 욱신거렸다. 다행히 발목은 괜찮아서 이번만큼은 멋진 골을 넣고 말겠다는 일념에 누가 깨우지 않아도 꼭두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큰애야! 클났다, 니 아부지 쓰러졌다?야.”

모처럼 공설운동장에 나가 공 좀 차겠다고 운동화 끈을 질끈 졸라맸는데, 어머니가 분합문을 밀치고 나오시며 필자의 어깨를 붙잡는다. 우리 집은 일제강점기 때의 초가집을 새롭게 개조한 부엌 두 칸, 방 세 칸의 새마을 주택이라서, 사람들이 꺽다리란 별명으로 부르는 1m 82 키에 100kg에 육박하는 아버님 체중이라면 ‘쿵, 꽝’ 지진이라도 터지는 소리가 났을 것이다.

한여름 땡볕에서 무리도 그런 무리는 없었다. 새벽에 냉수를 들이켜시곤 아버님은 맥없이 쓰러지셨다고 했다. 지금처럼 전화기가 흔하지 않아서 119, 112를 찾던 시절도 아니었다. 센터포워드를 보는 앞집 하호 형이 퍼뜩 떠올랐다. 해병전우회 구호와 마크가 새겨진 승합차, 공설운동장까지 5분 거리도 안 됐지만, 우리는 그 차를 운동장으로 끌고 가 온갖 개폼 다 잡았었다.

다급하게 현관문을 두드리자 흰 수건을 머리에 둘러쓴 형수가 설깬 눈을 비비며 대청으로 나왔다. 자초지종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얼룩무늬 팬츠 바람으로 일호 형이 잽싸게 우리 집 대문 앞에 차를 댔다. 텃밭 별채에 살던 간호사 춘자 씨도 잠옷 차림으로 차에 올라타 인공호흡과 심폐소생술을 번갈아가며 하느라 아침부터 비지땀을 쏟았다. 경광등을 울리며 고속도로를 질주해 눈 깜빡할 새에 K 의료원에 도착했다. 큰 위기를 맞을 뻔했는데, 아버님은 건강을 회복하셨고, 20여 년을 우리와 함께 덤으로 여기시며 즐겁게 사셨다.

버스 지나간 다음에 ‘나, 면장 아들이여!’ 외쳐본들 멀어진 버스가 되돌아올 리 없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세월호의 아픔과 갈팡질팡하는 사드 배치 건 등으로 이제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하여도 믿을 사람은 없게 됐다. 천년고도 경주인데 지진이 날 조짐도 보였다니,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보아도 뒤로 자빠지게 생겼다. 1분 1초가 급한 시국인데도, 누구도 나서질 않고 소 닭 보듯 하는 중이다. 이러다간 정말 큰일 나게 생겼다. 누가 닭이고 소인지는 몰라도 개판 1분 전임은 틀림없다. 

“밥 먹고 합시다.”

맛이 가도 참 못되게 가버렸다. 엊그제 국회의사당에서는 해괴망측하게도 답변하는 장관들이 시간을 끌며 필리‘밥’스터도 했단다. 대통령이 전자 결재로 임명했다는 자칭 흙수저 장관 해임건의 안건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야당 또한 좋아죽겠다며 야단인지 모르겠다. 먹고 살기가 옛날보다 좋아졌지만, 앉아서 공돈에 잇속만 챙기는 벼슬아치들은 더 우글거린다. 이들이 한꺼번에 갈라진 지진 틈으로 사라지면 몰라도 희망이란 단어는 영원히 우리 것이 아니다. 흘린 땀만큼 돈이라도 차곡차곡 쌓이던 6070 아버지 세대만도 못한 게 현실이다. 일거리도 떨어져 통장정리도 할 겸 은행 자동코너에 다녀왔다. 바닥난 통장을 생각하니 이래저래 입맛까지 떨어지는 대?한민국 가을은 초반부터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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