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관제·신고접수·수색구조 '3단계 조치' 정상 작동 안돼
잇단 부적절 발언·처신…민간유착까지 드러나 '국민적 분노'

 

▲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 담화에서 "해양경찰을 해체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밝힌 19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해양경찰청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해양재난 대응기관으로서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해양경찰이 조직 해체라는 최악의 운명을 맞게 됐다.

세월호 수색구조 작업에서 드러난 해경의 부실 대응과 무기력함은 사건 발생 초기부터 질타의 대상이 됐다.

해경은 우선 세월호 침몰 당일인 지난달 16일 세월호의 이상 징후를 초기에 감지하지 못했다.

진도 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VTS)는 세월호가 복원력을 상실하고 조류를 따라 떠밀려가는 비상 상황이 이어졌음에도 18분가량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목포해경은 구조를 요청하는 단원고 학생의 신고를 접수하며 선박의 경도와 위도를 물어보는 등 상황에 맞지 않는 질문으로 천금 같은 시간을 허비했다.

목포해경은 당일 오전 9시 예하 경비정과 헬기에 현장 출동을 지시했다.

그러나 세월호가 침몰한 10시 30분까지 현장에 도착한 경비함정은 100t급 경비정 1척, 헬기 3대가 전부였다.

바다라는 특성상 30분 안에 경비함정이 대거 현장에 집결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긴 하지만 해경은 초동 수색과정부터 실책을 남발했다.

현장에 첫 도착한 목포해경 123정은 선장·선원의 '1호 탈출'을 도왔다.

선박 구조를 잘 아는 선원들을 먼저 구조해 육상에 인계함으로써 초기 구조의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렸다.

▲ 19일 목포해경 전용부두에 123정이 정박해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사고 해역에서 구조 활동을 벌인 123정은 감사원 감사를 받기 위해 업무에서 배제된 상태다. 감사원은 123정 대원들을 상대로 초기 대응 실패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123정 탑승 해경은 당시 선원인 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여론에 질타를 받았다.

선원 상당수가 선원 작업복을 입고 있었고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조타실에서 구조된 사실에 주목했다면 누가 선원인지 쉽게 간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23정은 세월호 안에 수백명이 탈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선내 진입 후 퇴선 유도'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현장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지휘부가 선내 진입을 명령했을 때는 이미 선실 안으로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정도로 배가 기운 뒤였다.

세월호가 침몰한 뒤에도 해경의 부실 대응은 나아지지 않았다.

해경은 구난업체로 선정된 '언딘'과 민간 잠수부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지 못해 수색작업의 혼란을 초래했다.

또 세월호 침몰 다음 날 선장 이준석씨를 조사한 뒤 한 직원의 아파트로 데려가 잠을 재워 논란을 낳았다.

해경의 부적절한 발언과 처신이 국민의 분노를 불렀다.

목포해경의 한 간부는 해경의 초기 대응이 미진하지 않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해경이 못한 게 뭐가 있느냐? 80명 구했으면 대단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가 직위해제됐다.

제주해경 간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골프·음주 자제령에 아랑곳하지 않고 골프를 치다가 해임됐다. 부산해경의 한 정보관은 한국선급(kR)에 대한 검찰의 수사정보를 KR 측에 유출한 혐의로 구속됐다.

선주들로부터 향응을 제공받고 선박 부실 안전점검을 눈감아 준 해경 간부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해경과 유관 협회와의 유착 의혹도 불거졌다.

해경은 한국수상레저안전협회와 한국해양구조협회를 출범시키고 퇴직 간부들을 대거 재취업시켜 수상레저 문화 활성화, 선진 구조체계 확립이라는 출범 취지를 스스로 퇴색시켰다.

국민이 신뢰하는 세계일류 해양경찰을 꿈꾸던 해경은 결국 많은 국민에게 실망감과 분노만 안긴 채 출범 6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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