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다리꽃
                                                                                 황미라

  
무가 꽃을 피웠다
제 몸보다 몇 배 높이 꽃대 밀어 올린 보랏빛 꽃, 머리에 쓴 화관 같다
여기는 채소밭이 아닌 주방의 식탁
어머니가 싹둑 자른 윗부분을 옴팍한 접시에 담아 물을 줘 키운, 무를 말하는 것이다 
마주앉은 어머니 이마보다 더 높게 피다니,
꽃을 피우느라 시든 무와 누런 잎 사이
주름 깊은 어머니, 세상으로 밀어올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신다
멀대같이 꽃대만 흔드는 이 못난 자식을 두고 아직도 시름시름 속을 내주시는데
꽃으로 벙글 수 있을까 
울컥 내 목울대까지 차오른 건 어머니 눈물, 접시의 물처럼 나를 키운 바탕,
장다리꽃 유난히 크고 환하다

사진 이경영
사진 이경영

 

 

 

 

 

 

 

 

 

 

 

 

황미라 1955년 춘천 출생, 1989년 <심상> 신인상 당선, 시집 「빈잔」 「두꺼비집」 「스퐁나무는 사랑을 했네」 「달콤한 여우비」 「털모자가 있는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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