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실 기자.
                              이형실 기자.

패거리라는 말이 있다. 이념과 가치 추구보다 지연이나 학연 같은 연고를 바탕으로 폐쇄적인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돌봐주며 그들만의 기득권과 이익을 구하고 나누면서 공생하는 무리를 말한다. 이러한 무리가 정치에 개입하면 바로 패거리 정치가 되고 문화에 접근하면 패거리 문화가 된다.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산물 중 하나다.

지난달 18일, SBS는 구리시 인창동 행정복지센터 이전과 관련, ‘구리시장 지인 건물 전세 계약부터 수상한 이전’이라는 내용을 방송했다. 그런데 정작 목소리를 높여야 할 시장은 침묵 중인데 이상하게도 구리시의회 민주당 소속 의장은 입장문을 발표하는 등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혹시 방송에서 시의회를 거론했는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몇 번을 확인해도 시의회를 지적하거나 의혹을 제기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도 왜, 이 무슨 황당한 상황인가.

지난달 22일 시의장은 자신의 명의로 ‘인창동 주민센터 전세계약 논란 관련 구리시민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입장문을 작성하고 이를 자신의 입맛(?)에 맞는 3개 언론사에게만 제공했다. 의회의 수장으로서 적절치 못한 행동이다.

입장문엔 방송에서 거론조차 하지 않았던 ‘청사 재건축을 조속히 추진할 것, 전세 보증금 40%이상 보증보험 증권 확보할 것, 매입 월세 등 의회 의견 이행할 것’ 등 3가지를 조건부로 의결했으며 ‘의결과정을 투명하게 처리했다’는 문구를 넣었다. 즉, 의회는 잘못이 없다는 주장이다. 누가 물어봤는가. 상세한 내용에 친절까지 그 당시의 상황을 에둘러 설명했다. 무엇 때문일까.

의장 명의의 입장문엔 시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집행부는 의회에서 제시한 조건에 따라 행정복지센터 신축 실시설계가 진행 중, 금년 상반기 착공을 목표하고 있다’고 두둔했다. 견제와 감시 역할을 해야 하는 시의회가 오히려 시의 입장을 두둔하고 나선 것이다. 패거리 정치를 의심케 하는 이유다.

‘본 사안이 언론화된 것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다’고 서운함도 내비쳤다. 무엇이 유감스럽다는 걸까. 같은 당 소속의 시장을 거론해서, 아니면 의회를 의심해서, 아니면 보도를 한 것이 유감스럽다는 건가, 혹 물타기의 한 방편일까. 방송이 나간 뒤 의회 의장과 안 시장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의원과의 미팅이 있었다는 제보다. 바로 이러한 입장문이 태동하게 된 배경이 아닌가 싶다. 항간에 떠도는 잿밥(?) 때문일까,

SBS가 1월27~29일 3회에 걸쳐 보도된 내용은 차지하고라도 이번 주민센터에 대한 방송은 구리시의회가 조금만 신중했다면 발생하지 않을 사안이었다.

지난 18일 방송에서 시가 구 주민센터에 대한 정밀안전진단도 받지 않고 임대 계약을 한 것은 기본적인 행정절차를 무시한 것이며 경기도에 지방재정투자심사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전세 계약한 것은 문제임을 지적했다. 그렇다면 시의회는 이러한 행정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전세금 의결을 미뤄야 하는 게 정상이다. 당연히 시의회는 이러한 사항을 체크했어야 했다. 그 게 시민의 재산을 지키는 의회의 임무이며 도리다. 과연 그랬을까. 그 당시로 회귀해 보자.

2018년 12월5일, 구리시의회 제281회 2차 정례회 4차 본회의에서 동진오피스텔을 임시 주민센터로 사용키 위한 ‘2019년도 공유재산 관리계획안’이 상정됐다. 당시 이 사안을 설명하는 회계과장과 의원 간의 설전이 있었지만 어느 대목에서도 낡은 주민센터의 정밀안전진단 등에 관한 의견은 없었다. 다만 인근 어린이 공원부지에 위탁개발로 신축하는 방안이 구체화 됐을 뿐이다. 이날 의회는 임시 주민센터 이전 건을 불승인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불승인된 동진오피스텔 이전 건이 2개월 만에 부활됐다. 안 시장이 공원 부지에 신축 계획을 전면 철회하고 재정사업으로 재건축하는 단서를 붙여 의회에 이 계획안을 재상정한 것이다. 시의회는 2019년 2월15일, 제283회 임시회를 열고 논의에 들어갔다. 이번엔 행정지원국장이 제안 설명에 나서 ‘절박한 심정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이라는 속내도 내비쳤지만 야당의원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결국 여당 의원의 휴회 신청, 그리고 10분 후 속개된 회의장에서 주민센터 임시 이전 전세금 41억6000만원 승인 건이 의원 전원일치로 의결됐다. 단 시의회가 제시한 3개 안을 시가 수용하는 조건을 붙여서 말이다.

휴회하는 10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이럴 수도 있구나, 새삼 놀랍기만 했다. 불과 2개월 전에 불승인됐던 건이, 그것도 40억원의 예산 의결이 너무 쉽게, 전광석화로 처리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다수당인 민주당 의원들의 처신이다. ‘우리만 찬성한 게 아니다, 야당 의원들도 찬성했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 등원한지 7개월 밖에 안된 야당 초선의원에게 3개 조건안을 2번씩이나 대독케 했다. 이른바 멍에를 뒤집어씌운 것이다. 참으로 주도면밀하지 않은가. 이번 회기에도 구 주민센터에 대한 안전진단이나 지방재정투자심사 얘기는 전혀 거론이 안됐다.

이렇듯 구 주민센터에 대한 정밀안전진단, 경기도의 지방재정투자 심사 절차는 공무원의 방조 내지 묵인 아래 시의회조차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혹시 하는 의구심에 회의록을 뒤져 봤다. 역시였다. 따라서 이번 동진오피스텔 전세권 의결은 시의회의 명백한 실책이다. 시의회가 이러한 절차를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면서도 의결했다면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시의회의 실책은 또 있다. 분명 시의회는 전세금을 의결하면서 조속히 재건축할 것을 조건부로 내걸었다. 의결할 당시 5층 규모로 2020년 8월까지 실시설계 용역 및 인허가 완료, 2020년 10월 공사 착공, 2021년 10월 준공한다는 것이 시의 계획이었다. 이 계획대로라면 지금 현재 건물의 형태인 뼈대가 번 듯이 서 있어야 한다. 이 계획은 최근 4층 규모로 2월 실시설계 및 건축허가 완료, 2021년 3 공사 착공, 2022년 3월 준공으로 바뀌었다. 무슨 동네 집 짓는 것도 아니고. 아직 실시설계도 끝나지 않은 상태로 알려졌다. 이렇게 될 때까지 시의회는 조속한 재건축 사안을 챙기지 않았다. 이러한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에게 돌아갈 판이다. 이를 방치한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

그나저나 동 주민들의 반대에도 시와 의회는 본디 계획을 철회하고 절차 등을 어기면서까지 동진오피스텔 전세를 추진했던 이유는 뭘까. 방송이 나간 후 이 의문과 관련된 듯한 제보를 받았다. ‘동진오피스텔 전세금에 난색을 표했던 팀장이 전보되고 그 자리에 부임한 팀장에게 일을 맡겼다. 일을 처리한 팀장은 과장으로 승진했다’는 내용이다. 거짓 제보이기를 바란다. 

주민센터와 관련 의문점을 보도한 SBS기자는 ‘취재파일’을 통해 “행정복지센터 이전에는 안승남 구리시장뿐만 아니라 많은 공무원이 관련돼 있습니다. 지난 2019년 당시 구리시 자치행정국장, 회계과장, 회계과 재산관리팀장 등입니다. 행정복지센터 임시 이전에 구리시 예산에 손실을 끼쳤다면 이에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매화는 일생이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고 했다. 선비의 고고한 절개를 뜻한다. 당신과 나, 누구라도 같은 편이라고 잘못을 덮는 것은 죄악이다. 그 사람을 헤어날 수 없는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절개까진 바라지 않지만 조그만 양심마저 불의에 팔지 않길 구리시의회에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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