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택 편집위원

조선조 황후생가를 유일하게 보전해오는 여주시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황후 생가 주변일원을 성역화하고 있다. 그러나 여주시는 명성태황후에서 태(太)자가 빠진 명성황후로 잘못표기된 것을 알고도 10년째 방치 해오고 있다. 이에 따라 지도층 인사 등 각계의 지적을 받으면서도 이를 묵살해오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역민들의 의구심이 싹트고 있다.

명성태황후! 그분은 누구인가? 뛰어난 외교로 자주성을 지키고 개방과 개혁정책을 추진하다 1895년 10월8일 일인 잡배들에 의해 무참히 시해되어 파란만장한 비운의 왕비시다. 이후 고종태황제는 황후를 명성태황후(明成太皇后) 로 휘호(徽號)를 내려 명성태(太)황후가 되신 분이시다.

그러나 여주시는 명성태황후 생가를 250여 억원을 들여 13년에 걸쳐 성역화를 조성했음에도 명성태황후의 태(太)자가 빠진 비문과 동상까지 건립하고 10년째 방치하고 있다. 특히 지난 11월17일 탄신다례제 등 제향 홀기에는 태황후로 명기 제향까지 모시면서 이를 바로 잡지 않아 지적을 받고 있다.

고종태황제는 1897년 8월16일 전 세계에 대한제국임과 동시에 황제의 나라임을 선포하고 황제가 됐다. 따라서 대한제국은 고종황제를 태(太)황제로 일대 태조대왕을 고(高)황제로 또 위대 7분을 함께 황제로 묘호(廟號)를 내리고 황제의 나라가 되었다.

고종태황제는 또 황후를 시해하고 민비로 부르게 한 황후를 1897년 10월12일 명성태황후(明成太皇后)로 휘호(徽號)를 내려 명성태황후가 되었지만 일인은 민비로만 부르게하여 생가 주변 주민들은 민비로만 알고 명성태황후가 누구냐고 묻는 등 다른 황후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여주시는 지난 1995년도 명성태황후가 출생하여 8세까지 성장한 생가주변을 확보 생가를 보수하고 사랑채, 행랑채를 새롭게 건립하고 이외 기념관 문예관 연못 등을 조성하여 볼거리 위주로 성역화를 조성하여 수도권의 이름난 관광지로 알려지면서 많은 관람인이 찾아오고 있다.

거기다 명성태황후가 간택 전 머물러 게시던 320여 년전 숙종대왕이 계비 인현왕후 생가(부원군 민유중)로 건립해 준 감고당(感古黨)을 원형 그대로 이전 복원해 놓아 생가는 우아하고 산뜻한 한옥가옥으로 돋보이면서 인기리에 구식 예식장으로 이용되는 등 인기를 받아오고 있다.

특히 감고당(感古黨)은 인현왕후가 숙종대왕의 후궁 장희빈에 밀려 한때 생가에서 은둔생활을 한 생가를 영조대왕이 어린 시절 인현왕후의 따듯한 사랑을 받은 데다가 생모 숙종대왕의 후궁 숙빈 최씨가 모셔온 왕후 생가를 방문 감고당(感古黨) 휘호(徽號)를 내린 뜻 깊은 한옥이다.

또 생가에는 순종효황제(純宗孝皇帝)가 어머니의 고향마을이란 탄강구리비(誕降舊里碑)를 생가옆 옛날 명성태황후 공부방자리에 세워 보호각으로 잘 모셔져 있어 유일하게 황후생가로 보전되어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생가여서 찾아오는 관람인 모두가 관심을 갖고 살펴보고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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