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분양제도의 문제점에도 불구, 후분양제의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의견과 지금이 적기라는 '깁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 선분양제도의 문제점에도 불구, 후분양제의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의견과 지금이 적기라는 '깁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아파트 짓기 전 계약 체결돼 부실시공 우려된다"… "선분양제 바꿔야"
"급격한 후분양제 전환, 현실로 어려워"… 공급 감소·미분양 증가 우려

"3만원 짜리 옷을 살 때도 꼼꼼히 비교해보면서 사잖아요. 그런데 수억에서 수십억 원에 달하는 새 아파트는 실제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사니까 불안할 수밖에 없죠."

경기도 성남에 사는 이 모(36) 씨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 아파트 청약을 알아보고 있다는 그는 "건설사와 모델하우스를 꼼꼼히 보고 선택하긴 하지만, 아파트 하자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라며 "선분양제도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최근 새로 지은 아파트에서 각종 하자 문제가 끊이지 않으면서 선분양제 대신 후분양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건축물이 준공되기 전에 분양을 먼저 하는 선분양제가 아닌 주택건설이 완료된 후에 주택을 판매하도록 하는 후분양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6월 주택 후분양제를 공공 부문에서 단계적으로 도입하되 민간에서는 자발적으로 시행되도록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선분양제도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후분양제의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의견과 '지금이 적기'라는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 하루 평균 10건의 아파트 하자 분쟁…'기능 불량' 가장 많아

"아파트 계약하고 2년간 계약금, 중도금을 다 치르면서 기다렸는데 건설사는 왜 도면대로, 모델하우스대로 짓지 않는 건가요. 미시공, 잘못 시공된 부분이 너무 많아 아파트 입주예정일을 3개월이 넘긴 지금도 입주를 못 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한 청원인이 "선분양제 악용한 건설사를 막아달라."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다른 청원인은 "하자가 없는 아파트를 찾기가 어렵다."라며 "후분양제로 바꾸기 어렵다면 환불제도를 마련해달라."라고 덧붙였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민경욱 의원이 지난달 26일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아파트 하자에 따른 분쟁 신고 건수는 1만건이 넘는다. 하루 평균 10건의 아파트 하자 분쟁이 발생한 셈이다.

하자심사 분쟁조정위에서 '하자'로 판정된 건수는 전체의 43.9%인 4천433건에 달했고, 이 중 조정이 성립된 경우는 913건에 불과했다. 하자 유형별로는 기능 불량(20.7%)이 가장 많았으며 결로(13.8%), 소음(9.7%), 균열(9.3%), 들뜸 및 탈락(8.4%), 오염 및 변색(7.4%) 순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기도민 10명 중 7명은 '아파트 짓기 전 계약이 체결돼 부실시공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현행 아파트 선분양제도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는 경기도가 지난해 9월 전문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유·무선 전화면접 방식으로 만 19세 이상 도민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다.

선분양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6월 국토부는 올해부터 주택 후분양제도를 공공 부문에서 단계적으로 도입하되 민간에서는 자발적으로 시행되도록 유도하는 '투트랙' 전략을 수립했다. 후분양의 기준이 되는 공정률은 골조공사 수준인 60%로 정해졌다.

◇ "후분양제 도입되면 실제 아파트 보고 살 수 있어"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소비자의 선택권이 보장된다. 부실시공 등 변수를 예방하고 실수요자 위주의 주택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

선분양제도는 1997년 아파트 분양가 규제와 함께 적용됐다. '주택 공급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주택 공급은 후분양이 원칙이지만 선분양은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건설사는 청약금 및 계약금 20%, 건축 기간에 60% 등 전체 분양대금의 80% 내외를 무이자로 수요자로부터 조달할 수 있다.

선분양제도는 계약자, 건설사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며 유지됐다. 건설사는 자금력이 부족하더라도 은행 대출과 계약금, 중도금으로 건축이 가능해 유리하고, 계약자는 주택자금을 2∼3년 동안 분할 납입할 수 있어 부담이 적다. 또 계약자는 건축 기간 아파트 가격 상승에 따른 시세차익 실현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점도 크다. 황준성 IBK경제연구소 산업연구팀 계장은 '후분양제 도입 의무화, 과연 지금이 적기인가?' 보고서에서 "선분양제는 공급자 중심의 제도로 불합리성이 크다."라며 "입주예정자는 모델하우스만 확인하고 계약을 하게 돼 품질검증을 하지 못한 채로 중도금까지 지불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건축업체는 이미 80%에 달하는 건축대금을 받았기 때문에 이윤 극대화를 위해 부실시공, 품질저하 유혹에 빠지기 쉽다."라고 지적했다.

또 "분양권 전매시장이 형성돼 부동산 투기가 발생하고 분양권 가격에 거품이 끼게 돼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김학환 숭실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후분양제도가 도입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확실하게 지어진 건물을 보고 조망 등도 볼 수 있다는 굉장한 장점이 있고 분양권 투기가 줄어들어 주택 실소유자에게 적절한 가격에 아파트를 분양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 "후분양, 주택시장 침체 우려도"

후분양제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건설사 자금조달 부담 등으로 주택시장이 침체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부도 민간 부분에 후분양을 의무화하지 않았다. 주택시장에 너무 큰 부담을 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민간 부분의 후분양을 유도하기 위해 택지를 우선 공급하거나 주택도시기금 융자 조건을 완화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주택협회 김대철 회장은 지난 4월 기자 간담회에서 "선분양과 후분양은 양쪽 다 장단점이 있는데 (후분양이) 무조건 좋은 것인지 생각 봐야 한다."라며 "후분양을 하면 오히려 우량, 비우량회사 간 자금조달 능력에 차이가 커 공급이 줄어드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금융권과 건설업체는 후분양제를 시행할 경우 '분양위험'을 가장 큰 위험으로 예상했다. 건설사의 자금조달 부담으로 분양가가 상승하고 한 번에 큰 비용을 낼 수 없는 수요자들의 주택 구입 감소가 맞물리면서 미분양이 증가할 수 있다는 예측이다.

고성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재건축 조합, 부동산개발회사 등) 시행사는 일반 건설사보다 신용도가 낮은 경우도 많아 건설 자금 동원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웬만한 시행사들은 자금 여력이 없어서 주택 공급이 어려워질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갑섭 KB국민은행 구조화금융부장은 '후분양제도와 보증기관 리스크관리' 보고서에서 "지금까지 선분양제가 지속된 국내 주택시장의 특성을 고려할 때 급격한 후분양제로의 전환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부장은 "인구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미 100%를 넘어선 주택공급률, 분양권 투기의 폐해, 소비자의 권익향상 등을 고려했을 때 후분양제의 도입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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