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권 포천소방서장

60~70년대,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그늘 속에서 아직 도시의 뒷골목에는 미처 정비되지 못한 가옥들이 무질서하게 난립해 있었다. 한 뼘씩이라도 더 잉여공간을 찾아 땅따먹기 하듯 사유공간을 확대하고 있었다. 그 사이를 지나는 도로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우마차가 다니기에도 비좁았다. 어쩌다 화재로 인해 하루아침에 수십 채의 가옥이 불에 탄 잿더미로 변하는 일 또한 비일비재 했다. 급기야 소방도로가 생겨났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 아직도 소방도로는 없다. 2015년 초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화재사고는 그 참상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면도로는 그사이 매끈하게 포장되어 때때로 덩치 큰 택배차량, 이삿짐차량이 수시로 드나들지만 해가 저물면 무질서한 주차차량들로 인해 여전히 소방도로는 없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소방도로, 그 본래의 기능이 마비된 지 오래되었다

생명의 시간, ‘골든타임’이라는 말은 당초에는 시청률이 높은 비싼 광고 시간대를 일컫는 말 이었다 의미상으로는 '골든아워'라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생명을 구조하기 위한 금쪽같은 시간, 골든아워를 지키기 위해 소방통로 확보와 소방차 길터주기 캠페인을 상습정체 구간에서 정례적으로 실행하지만 21세기 주택가 ‘속길’에는 골든타임에 무관심한 운전자들이 넘쳐난다.

주거지 주변에 있는 폭 9m 미만의 도로를 ‘생활도로’라고 규정한다. 대개는 보도와 차도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이면도로’를 일컫는다. 과거 우리 귀에 익숙한 소방도로는 현재 통용되는 용어는 아니지만 골든타임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볼 때는 생활도로를 차라리 소방도로라고 명명하는 것이 적절하다. 복고적인 취향 탓이라기 보다는 소방도로라는 용어에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녹아 있다고 본다. 바로 그 소방도로 위에 소방차 통행로를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폭, ‘파이어레인(Fire Lane)’을 그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동안 소방서에서는 전통시장 주변이나 특히, 상습적인 소방차통행곤란 지역에 노란색 생명선, ‘파이어레인’을 설치했고 시시때때로 소방차량을 동원해서 주민계도와 경고조치 등을 주기적으로 실시해 오고 있지만 주민들의 호응은 그 때 뿐, 일과성으로 그치고 있어 소방도로 주차질서 현장에서는 공권력이 무색해 졌다. 

‘파이어레인’이 설치된 구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에 대한 계도는 이미 충분히 이루어졌다. 이미 2011년부터 소방공무원에게 주차위반 단속권한이 부여되어 있다. 이제는 ‘파이어레인’에 대한 주차금지장소 입법화를 통해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한 시기이다. 더 이상은 소방차가 들어가지 못해 인명피해가 확대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소방도로 위에 생명선을 그을 때가 무르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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