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도 선원도 아닌 법적 신분의 한계로 최저임금제 적용 못 받아

실습해기사들이 민간선박에서 일반 선원들과 동일한 수준의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터무니없는 금액의 수당을 받는 등 정부나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철민 의원(더불어민주당/안산상록을)은 27일 해수부가 제출한 자료와 관련 현황을 분석한 결과 해사고나 해양대 학생들이 선박직원이 되기 위해 필수적인 민간선박 실습과정에서 강도 높은 업무에도 불구하고 월 30만원 남짓의 수당을 받는 등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어 정부가 제도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해기사’란 「선박직원법」에 의해 선박직원이 되기 위한 면허를 받은 사람을 말하며 항해사, 기관사, 통신사, 운항사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해사고나 해양대 등의 학생들이 해기사 면허를 위해서는 9개월에서 1년간 민간선박에서 실습과정을 거쳐야 한다.

해양수산부의 자료에 따르면 이들이 실습 중에 받는 수당은 월 2~30만원에 불과하다. 위험수당과 작업수당으로 1~20만원이 추가되기도 하지만 선사 및 선종에 따라 차이가 크고, 강도 높은 선상 업무에 비하면 ‘열정 페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실습해기사의 열악한 처우는 이들이 선원도 아니고 근로자도 아닌 ‘실습생’ 신분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선원법」에 따라 선박에서 근로를 제공하기 위해 고용되는 선원은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는 대신 해양수산부의 ‘선원 최저임금 고시’에 따른 선원최저임금의 적용을 받으며 2016년도 선원 최저임금은 월 1,641,000원이다.

문제는 실습해기사처럼 선원이 될 목적으로 실습을 위해 선박에 승선하는 경우에는 「선원법」 제2조 1호 단서와  「선원법 시행령(대통령령)」 제2조 5호에 의해 선원에서 제외된다는 점이다. 결국 실습해기사들은 근로자로도 선원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면서 최저임금법과 해양수산부 고시 모두 적용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정부가 「선원법 시행령」을 바꾸지 않는 한 실습해기사들이 「선원법」의 적용을 받는 ‘선원’에 해당하지 않는 점은 명확하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로 근로기준법이나 최저임금법 등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근로자’에도 해당되지 않는 지 따져봐야 한다.

대법원은 이미 30년 전에 “실습생이라는 사유만으로 작업기간이 잠정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바로 이러한 사유만으로 동인이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고 사업주와 실습생사이의 채용에 관한 계약내용, 작업의 성질과 내용, 보수의 여부 등 그 근로의 실습관계에 의하여 근로기준법 제14조의 규정에 의한 사용종속관계가 있음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실습생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결(1987. 6. 9. 선고 86다카2920)한 바 있고, 이 대법원 판결이 현재까지도 실습생의 근로자 인정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선종이나 선사 등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실습해기사들의 업무 형태나 선박회사와의 계약내용을 보면 대법원 판결에 따라 근로자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실습 중인 선박회사에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실습해기사들 스스로가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처우 개선을 요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정부가 「선원법 시행령」을 변경하거나 처우개선을 위한 별도의 정책을 마련해 법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철민 의원은 “현재 국내 선박회사들은 내국인 해기사에 대한 구인난을 겪으며 필리핀, 미얀마 등 외국인 해기사들의 비중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실습해기사의 처우개선 문제는 사법부에 판단에 앞서 현장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해양수산부가 나서야 개선 과정의 부작용도 최소화할 수 있다. 해운산업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세대들에게 ‘열정’과 ‘노력’을 강조하기 전에 최소한의 대우와 예비선원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일할 여건을 만드는데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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