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광 삼매로 마귀를 물리친 진묵대사가 부처임을 깨닫고 존경

#1,진묵대사는 조선 명종 17년(1562)에 전라도 만경현 불거촌(萬頃縣 佛居村,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 성모암 자리)에서 태어나서 임진왜란 시기를 거쳐 인조 11년(1633)에 72세로 입적하였다. 
진묵 대사 본인이나 제자가 쓴 행적(行蹟)은 없는데, 1850년에 초의선사(草衣禪師)가 짓고 전주 봉서사(鳳棲寺)에서 간행한 '진묵대사유적고(震 大師遺蹟考)'에 그의 일화가 18편이 전한다. 구전하는 진묵 대사 관련 전설은 현재 32편 정도가 채록되었다.

운문암 에는 금을 입히지 못한 부처가 있었다. 선조 초기에 진묵대사가 이 암자에 있으면서 불상을 만들다가 완성되기 전에 어디로 가면서 다시 자기가 와서 완성하기 전에는 손을 대지 말라고 부탁해서 그 말대로 하였는데 그 뒤 진묵대사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흙만 바른 부처로 전해오고 있었다고 한다.

이 불상과 관련 깊은 진묵대사의 본명은 일옥이라 했는데 이상한 행적이 많았다. 어떤 날 저녁 여러 사람의 꿈에 호법신이 나타나서 부처가 차 받드는 일을 하는 것은 황공하다고 했다. 그 때 진묵대사는 그 암자에서 차 받드는 일을 맡았는데 처음은 모두들 어리둥절하게 생각했다.

이 후에 남녀 나무꾼이 산에서 부랴부랴 쫓겨오면서 대성 통곡을 하여 사유를 들은즉 일옥이라는 중이 불로 지져서 그 기운에 못 이겨 도망쳐 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여러 사람들은 무릎을 치며 진묵대사가 부처임을 깨닫고 더욱 대사를 존경하게 되었다. 화광 삼매로 마귀를 나무꾼에게서 물리친 것이기 때문이다.
 
 #2, 외설악 신흥사 주변 서북계곡으로 따라 올라가 산마루에 올라서면 보이는 ‘울산바위’.

이곳은 금강산이 만들어질 때, 울산(蔚山)에서 둘레가 10리나 되는육중한 몸을 이끌고 가다가 이미 자리가 다 차서 이곳에 눌러앉았다는 전설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 전설과는 달리 울산(鬱山)바위의 울(鬱)은 울타리처럼 생겼기에 지어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이 전설이 조선시대에 이르자 또 다른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유생들의 기세가 등등하던 시절, 울산부사가 이 바위의 지세(地稅)를 물라며 

신흥사 주지에게 횡포를 부리자 영리한 동자승이 꾀를 내어 도로 울산으로 옮겨가라 했다. 한술 더 떠서 타고 남은 재로 새끼를 꼬아 묶어주면 바위를 옮기겠다는 억지에, 새끼를 꼬아 울산바위를 감은 후 태워버려 난처함을 슬기롭게 극복했단다. 울산바위 바로 밑의 ‘계조암(繼祖庵)’은 다른 암자와 달리 지붕과 벽이 모두 바위로 돼 있다.
 
득도하기 쉬워 고승이 계속해서 났다 하여 ‘계조(繼祖)’라는 이름이 유래됐다.
한 스님이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노력하던 어느날, 계속 들려오는 목탁소리에 잠도 이루지 못한 채 염불을 하다가 어느 사이에 득도를 이루게 됐다.

떠나는 마지막 날, 꿈 속의 노승이 일러준 대로 멀리서 계조암을 바라보니 꼭 계조암의 지붕바위가 목탁이고 그 옆의 산줄기가 목탁 방망이처럼 생겼더란다.
큰 목탁 속에서 수도를 하니 어찌 득도가 빠르지 않겠느냐는 계조암의 내력이다.
 
#3, 이곳은 여름이면 매미가 많기로도 유명하다. 매미 울음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다며, 이들을 벙어리로 만든 도사를 피해 도망 온 한 떼의 매미들이 동료의 신세를 슬퍼해 그들의 몫까지 울어주기 때문이란다. 신흥사 조금 못 미쳐 소공원에서 남쪽으로 바라보이는 해발 860미터의 험준한 돌산에는 옛 성터인 ‘권금성(權金城)’이 있다. b옛날, 이 마을에는 권 장사와 김 장사가 살고 있었는데 병란을 당해 가족과 함게 산 위로 피난했다가 적병들을 막기 위해 두 사람이 하룻밤만에 성을 쌓아, 이들의 이름을 따서 ‘權金城’이라 부른다는 유래도 있다.
 
#4,설악의 빼놓을 수 없는 장관인 오색에는 주전골 양 옆으로 빼어난 기암과 봉우리들이 즐비하다. 하늘의 벌로 억겁 세월 이별의 고통을 되풀이해야 하는 견우 이야기는 이곳에도 있다.
 
7월7일, 상봉 시간이 너무 짧아 아쉬워하던 견우는 하늘 닭에게 울지 말아달라 부탁을 하며 뇌물을 건넸다.
하늘 닭이 뇌물을 받자마자 이들 몸이 굳어져하늘 닭은 ‘천계암’으로 견우와 직녀는 ‘견우 직녀암’이 됐는데, 지금은 각각 ‘흔들바위’와 ‘부부암’으로 불리고 있다.
 
목욕하다가 옷을 잃어버려 승천하지 못한 두 선녀의 ‘옥녀폭포’와 ‘여신폭포’, 선녀의 옷을 훔친 선관이 굳어진 ‘독주(獨走)계곡’과 ‘독주폭포’.선관의 탕건과 상투는 ‘탕건바위’와 ‘상투바위’가 되고, 선녀의 옷은 ‘치마폭포’와 ‘속치마폭포’가 돼 아직까지 옥녀폭포 주변을 맴돈다.
 
선녀가 목욕하던 선녀탕에서 약수계곡까지 흐르는 물은 ‘음수(陰水)’이고, 독주폭포에서 흘러내려 오는 물을 ‘양수(陽水)’라 하는데, 이곳 오색약수가 건강식수로 호평을 받는 것이 ‘음양의 원리’에 의한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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