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안 보이는 서가 구조에 도서검색도 불가능

▲ 지난 18일 오전 경기도 파주출판도시 '지혜의 숲' 도서관에서 자원봉사자가 이동식 사다리에 올라 책을 꺼내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국비 7억원이 들어간 이 도서관은 이용객들이 책을 꺼내볼 수 없게끔 디자인돼 전시용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파주출판도시에 문을 연 '지혜의 숲' 도서관이 세금을 7억원이나 들인 북카페에 불과하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서울에서 자유로를 차로 30여분 달린 곳에 자리 잡은 파주출판도시는 1999년 파주시 문발동 일대에 국가산업단지로 출발, 출판·인쇄업체 300여곳이 입주해 있다.

지난달 19일 이곳 출판도시 내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건물에 '365일 24시간 개방'을 내건 지혜의 숲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이름의 도서관이 문을 열자마자 출판 관계자들로부터 '종이 무덤'이라는 오명까지 얻고 있다.

개방한 지 한달을 하루 앞둔 지난 18일 '지혜의 숲'에 직접 가봤다.

'지혜의 숲'에 들어서니 8m 높이 서가에 책들이 빼곡한 모습에 압도됐다.

이어서 개인이 기증한 헌 책 수만권과 출판사와 도서 유통회사에서 내놓은 새 책 수만권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도서관 사업을 주관한 사단법인 출판도시문화재단 측도 이 점을 가장 홍보한다.

그러나 눈에 확 들어오는 모양새와는 달리 도서관으로서의 기능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선 고개를 아무리 들어 올려도 2m 이상의 높이에는 어느 책이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층을 나눈 난간과 계단이나 사다리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도서 검색으로 위치라도 확인해 도서관 관계자에게 책을 찾아달라고 하면 좋겠지만, 전산화가 안 돼 있다.

바퀴 달린 이동식 사다리가 하나 놓여 있었으나 도서 검색이 안 되니 애초에 무용지물인 셈이다.

도서관에서 만난 양모(30)씨는 "무슨 책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난감하다"면서 "검색이 안 된다면 책이 눈높이에서 다 보이기라도 해야 할 텐데 그렇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눈높이에서 보이는 책들이라고 사정이 좀 나을까.

대부분 교수나 연구원인 개인들의 기증도서의 면면을 보면, 대학교재·원서·연구보고서 등이 많아 이곳에서 책을 꺼내 보는 방문객은 거의 없었다.

다만, 높다란 책장 앞에서 사진을 찍고 서로 찍어 주는 이용객들만 몇몇 보였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읽을 만하고 가치가 있는 책을 기증한 것이 아니라 처리가 곤란한 책들만 내놓은 것 같다"면서 "그마저도 쉽게 읽을 수 없게 서가를 만들어놨으니 책을 실내장식 소품으로 전락시킨 '종이 무덤'에 불과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공개한 도서관 조성계획을 보면 토지 매입과 건축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데도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산을 7억원이나 지원했다.

이 중에서 4억6천만원이 서가 조성공사에 쓰였다.

또 도서 전산화 하드웨어 구축에 3천500만원, 검색대·테이블·의자에 5천만원 예산이 잡혀 있지만, 이 중에서 이뤄진 건 테이블 수십개와 의자뿐이다.

이 같은 비판에 재단 측은 색인작업을 진행 중이며 부족한 점은 개선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단의 한 관계자는 "이용객들이 불편을 느끼는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하는 중"이라고 했지만 "개인이나 업체별 기증 도서 권수는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혀 허술함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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