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정부보훈지청 보훈과 이광우

보통 7월하면 무슨 날이 있다고 생각할까? 많은 사람들이 제헌절을 생각할 것이다. 제헌절도 중요한 날이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날이 또 있다. 바로 7월 27일이다.

7월 27일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로서 민족상잔의 비극으로 불리는 6?25전쟁에서 모든 전투행위를 멈춘 날이다. 이 협정이 체결됨으로써 수많은 국군, UN군의 희생과 헌신이 결실을 맺게 되었고, 국민들은 자유민주주의 아래에서 삶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올해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1주년을 맞이한 해로서 우리나라가 얼마나 단 시간내에 기적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날을 작년부터 ‘UN군 참전의 날’로도 기념을 하고 있는데,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낯선 땅에 와서 기꺼이 당신들의 목숨을 바쳐 우리 대한민국을 지켜준 UN군 참전용사들에게 그 공헌을 우리들은 결코 잊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우리는 UN군이 이 땅의 어디에서 어떤 악조건을 무릅쓰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갔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다. 6?25가 우리 민족이 서로 간에 총을 겨눠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결코 우리들만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UN군이 활약한 전투가 다수 있는데, 그 중에서 경기도 북부 지역에서 치러진 설마리 전투를 간단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설마리 전투는 1951년 4월 22일부터 25일까지 임진강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이며, 여기서 크게 활약한 군은 우리나라에 두 번째로 많은 전투병을 파병한 영국군이다.

당시 전황은 1950년 10월 중공군의 개입 이후 서울의 재피탈과 수복을 반복하면서 양측의 공세가 팽팽하게 맞서던 시기였다. 그 와중에 중공군은 서울을 재탈환하기 위해 압도적인 병력으로 임진강을 건너와 파상공세를 가하였다. 

이 공세로 인해 당시 적성면을 방어하고 있던 영국군 글로스터 대대가 다수의 중공군 사단에 의해 포위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하지만 지평리 전투에서 미군 2사단 23연대가 고립방어를 성공한 전례가 있었기에 영국군도 마찬가지로 고립방어를 택했다. 그래서 4일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방어했지만 아군의 외부지원 실패로 계속된 방어는 더 이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절망적이었지만 그들은 결전 또는 항복이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과감하게 결전을 택했다.

결전의 대가는 참혹했다. 부대원 중 60여명이 전사하고 530여명이 포로가 되었으며, 탈출에 성공한 부대원은 40여명 정도였다. 하지만 이 4일간의 방어는 동두천 지역으로 돌파구를 확대하려는 중공군의 계획을 크게 지체시키면서 아군이 서울 북방에서 방어작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였고 이어서 벌어진 가평전투에서 중공군의 대패배로 이어지게 했다.

우리는 이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해 1957년에 설마리 기념비(영국군 참전 기념비)를 세웠고, 올해 4월에는 기념비 인근에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도 세워서 준공식도 가졌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결코 그냥 얻은 것이 아니다. 글로스터 대대 같은 헌신적인 UN군 용사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만약 파주 적성면을 가게 될 일이 생긴다면 이 공원을 꼭 한번 방문하기를 권한다. 여기서 우리들이 할 일은 이들을 잊지 않고 추모하고 기억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용기와 희생을 상징하는 UN군에게 감사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일간경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