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국 국장대우 이형실

‘강력범죄 연간 1만5천 건, 하루 무임승차 횟수 25만 건’ 1980년대 미국 뉴욕 지하철의 현주소다. 가히 무법천지라고 불릴 만큼 무질서의 극치였던 그곳. 범죄가 난무하던 그런 곳에 사소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것은 열차를 가득 덮고 있는 낙서를 지우는 일. 혹시 조그만 낙서라도 발견되면 다음날 열차를 운행하기 전까지 낙서를 지우고 운행할 정도로 사소한 부분에 집중했다. 그 결과 1990년대의 뉴욕 지하철은 시민들이 안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바뀌게 된다. 사소한 일이 변화를 만든 것이다. 이것이 ‘깨진 유리창 이론’이다. 

지난 1982년, 미국 심리학자 조지 켈링과 제임스 윌슨이 발표한 사회범죄심리학 일종의 ‘깨진 유리창 이론’은 사소한 것을 방치하면 큰 범죄나 사회문제로 이어진다는 ‘사소’한 것에 무게를 두고 있다. 

무더위가 수그러들 무렵인 지난해 8월 28일, 구리전통시장에 원인불명의 화재가 발생, 수 십 개의 점포가 전소되는 등 1백여 명의 토지, 건물주가 5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다. 명백한 지역의 재난이었다. 

 이에 따라 시는 재난관리기금 2천여 만 원으로 화재 난 건물의 안전진단을 실시하는 등 후속대책을 강구했다. 하지만 사유지라는 이유를 들어 사실상 화재현장은 무려 10개월 동안 방치해 왔다. 당연히 화재현장은 철근과 파이프, 차양 골격 등 화재 잔재물은 통행하는 주민들을 위협했으며 쓰레기더미에서 발생하는 악취 등은 인근 주민들을 환경공해에 시달려 민원이 끊이질 않았다. 

지난 4월 13일, 시장재선거에서 당선된 현 백 시장은 화재현장을 방치할 경우 주민안전은 물론 전염병이 창궐할 것을 우려해 예산 2천8백여만 원을 들여 5월 18일부터 6월 23일까지 2.5t 12차 분량의 쓰레기를 치우는 등 오랫동안 방치해 왔던 화재현장을 말끔히 정리했다. 여기까지는 백 시장이 칭찬받아 마땅한 대목이다. 

그러나 문제는 불거졌다. 백 시장과 정치적 이념이 다른 한 시의원이 화재현장을 정리하는데 사용한 예산의 출처 등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 의원은 지난 8일, 시정질문에서 “사용한 예산이 재난관리기금인데 어느 곳에서도 이 기금을 지출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며 수의계약한 이유를 캐 물었다. 평소 시민들을 위해 무료 외국어강좌를 펼치는 등 대민봉사는 물론 논리 정연한 사고를 지닌 이 의원의 이날 질문은 필자에겐 다소 옹색하게 들린 것은 왜 일까. 

시정답변에 나선 백 시장은 “전염병 예방과 집중호우를 대비키 위해 긴급히 재난 및 안전관리법시행령과 시 조례에 부합된 재난안전기금을 정당하게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끝내 충돌, 정기회가 끝났는데도 의회와 집행부 간에 법리해석 공방은 계속 진행 중으로 그  도를 넘고 있다. 

황희 정승 말마따나 이 의원의 주장도 백 시장의 주장도 다 맞다. 그러나 시민들로부터 거둔 세금을 시민들을 위해 사용한다는데 그것이 재난관리기금이든 어떤 기금이든 간에 논쟁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논란거리가 안된다. 물론 예산마다 계정이 있긴 하지만 정당한 곳에 사용한다는데 ‘의원에 가야하는데 왜 병원에 갔느냐’는 식의 발목잡기는 어딘가 모르게 치졸한 느낌이 든다. 더욱이 정확한 법과 조례에 따라 사용했다고 하지 않던가. 

설령 이 의원 주장대로 백 시장이 재난관리기금을 전용한 것도 모자라 수의계약으로 예산을 집행했다고 치자. 잘못했다면 언론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난도질을 당해도 수없이 당했을 것이다. 이슈가 될 정도의 예산규모가 아니며 명분도 없다는 뜻이다. 사리사욕을 위해 사용한 것도 아닌데 재발 방지를 위해 지적으로 끝났으면 됐지 굳이 잘잘못을 가리겠다는 저의는 무엇인가. 

20여년을 기자질한 필자는 그릇된 판단으로 비교적 큰 규모의 예산을 전용한 사례를 숱하게 봐 왔다. 그 때는 지금처럼 시끄럽지 않았다. 조용했다. 왜, 정치적 이념이 같아서....?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만으로 화재현장을 방치한 사람과 설령 사용하면 안 될 기금이라도 시민들을 위해 기꺼이 사용한 사람, 둘 중에 진취적이고 합리적이며 현명한 리더는 누굴까. 시민들이 판단할 일이다. 

이쯤에서 앞에서 거론한 ‘깨진 유리창 이론’의 실례를 제시하며 시와 시의회가 이 이론에 주목했으면 한다. 

한 교육방송은 방치된 느낌의 자동차를 골목에 세워두고 자동차의 문을 망치로 부순 후 ‘깨진 유리창’ 자동차 안 시트에 카메라와 지갑을 두고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여러 사람들이 이 자동차 주변을 기웃거렸고 몇 시간 만에 한 사람은 이 차에 탑승, 카메라와 지갑을 가지고 유유히 사라졌다. 

또 다른 실례, 쓰레기무단투기 장소에 폐쇄회로와 경고 문구를 설치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느 날 한 시민은 이곳에 예쁜 화분을 가져다 놓았는데 이상하게도 그 이튿날부터 쓰레기 무단투기 행위는 사라졌다. 이렇듯 사소한 변화가 불법적인 행동을 멈추게 했으며 사소한 방치가 큰 범죄를 일으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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