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죽화는 군사들의 앞장에서 용맹하게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강감찬장군과 관련한 전설도 실재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것이였다.

강감찬장군이 태여날 때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졌다는 이야기와 그가 어느 한 지방의 관리로 있을 때 백성들을 해치는 범을 불러 다시는 해치지 못하게 다스린 이야기, 개구리가 너무 울어 부적 한 장을 써주면서 그것을 연못에 던지라고 하인에게 명해 그처럼 소란하게 울던 개구리들의 울음을 그치게 하였다는 이야기와  거란침략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세 번째로 고려에 쳐들어왔을 때였다.

강감찬장군이 구주성의 인민들, 군인들과 함께 거란침략자들을 섬멸할 준비를 갖추고 있을 때 한 ‘소년’이 그를 찾아왔다. 

그는 강감찬장군에게 자기를 꼭 군대에 받아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강감찬장군은 그의 몸이 너무 약하고 나이가 어려 보이므로 “너의 뜻은 장하나 뒤에 나이가 차거든 그때 다시 오도록 하여라”고 말하였다.

‘소년’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힘있는 어조로 “나라를 위하는데 어찌 나이를 헤아리며 몸이 크고 작음을 가리겠나이까”하니 강감찬장군은 깊이 생각하다가 그를 군대에 받아주었다. 

“장하도다, 나라를 생각하는 너의 마음이 갸륵하도다”라고 하면서 강감찬장군은 흰말 한 필과 자기가 다루던 창 한자루를 주었다. 그 ‘소년’이 바로 설죽화였다. 설죽화는 군사들의 앞장에서 용맹하게 싸웠다.

적을 쳐부시는 수많은 싸움에서 많은 상처를 입은 그가 적의 가슴에 멸적의 창을 박는 순간 뒤로부터 날아오는 적의 화살에 맞고 장렬한 최후를 마치였다.

 구주싸움이 우리의 승리로 끝났을 때 설죽화의 시체가 발견되였다. 그의 애국정신에 감동되여 시체 앞에 한동안 말없이 서 있던 강감찬장군은 피묻은 갑옷에 고이 간직되여 있는 한 장의 글발을 보고 비로소 그가 소년이 아니라 꽃다운 처녀라는 것을 알게 되였다.

원주시 일산동  옛 감영때 건물인 선화당이 있는데 그 뒤에는 큰 연못이 있었다. 

지금은 흙으로 메워 없어졌지만 그 자취만은 남아있다. 지금부터 구백여년전부터 그때의 명장인 강감찬이 이곳에 들렸다.

강장군이 왔다 해서 이 고을 수령은 극진한 대접으로 그를 환영했다.
 강장군을 조용한 가운데 편안히 주무시게 해야겠는데 객사바로 연못에서 개구리 소리가 요란해 잠을 이룰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수령은 하인을 시켜서 개구리 소리가 나지 않도록 입초를 세웠다.

연거푸 연못에 돌을 던지면 개구리들이 놀라 울음을 그치리라는 생각에서 였다.

하인은 열심히 초저녁부터 주워온 돌을 던졌다. 이에 놀란 개구리들은 처음 얼마동안은 잠잠했으나 나중에는 계속해서 악마구리 끓듯 울어대는데 속수무책이었다. 

수령의 명을 받은 하인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는 큰 장대를 가져와 두들겨 보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강감찬은 방안에서 대발 밖으로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 하인이 애쓰고 있는 모습이 안스러웠다. 

그는 그 하인을 불러 지묵을 가져오라 했다. 그 하인은 개구리를 못 쫓아 장군을 잠못들게 한 것이 죄스러워 몸둘바를 몰랐다. 

그는 지묵을 장군에게 갖다 바쳤다. 그랬더니 강감찬은 부적 한 장을 써주면서 그것을 연못에 던지라고 하인에게 명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그렇게 법석을 떨던 개구리들이 울음을 뚝그치는 것이었다.

강감찬 은 이튿날 아침 늦게까지 편안히 잤다. 이튿날 아침 수령은 강장군 방에 문안을 드리러 와서 "대감 간밤은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워낙 연못 가까운데 있는 침실이라서 혹시 개구리 울음소리에 단잠을 설치지는 않으셨는지요."

"잘잤소. 한 밤중이 되니 그 후부터는 개구리가 울지 않더군요"

"실은 하인을 세워 개구리를 쫓았습니다"

수령은 자기 성심을 생색내려 했다.

그러나 강감찬이 부적을 던진 후부터 그 연못부터에서는 다시 개구리 울음 소리가 나지 않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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