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어.” 버스정류장 옆 가겟집 평상에서 가뭄으로 말라비틀어진 밭고랑을 바라보던 농부 C 씨가 내뱉은 말이다. 이젠 하늘을 탓할 면목도 없다. 하늘도 포기한 모양이라면서 페트병 물을 연신 들이켜고는 한숨을 내뿜는다. 마른장마가 지긋지긋할 정도로 시간을 질질 끄는 못 믿을 정치권을 빼닮았다 싶었는데, 7월 첫날 장맛비가 내린다던 기상청 예보가 하필 오늘은 용케 맞아떨어졌다.

우산을 챙겼어야 했는데, 너무 잦은 분실 탓에 웬만하면 그냥 나온 지 오래됐다. 불볕더위가 심해 바람막이 등산복을 돌돌 말아 가방 속에 넣어두었다. 여차하면 뒷덜미 지퍼를 열어 모자를 뒤집어쓸 요량이었다. 점심나절까지는 멀쩡했던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내리쏟아졌다. 길바닥에 널려있던 부스러기들이 둥둥 떠 있다. C 씨는 잽싸게 밭을 향해 튀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단비인데 옷쯤이야 빨면 된단다.

20대 국회도 초장부터 역시나 하루 한 날 바람 잘 날 없다. 국회의원들은 요맘때면 특권을 내려놓겠다며 믿거나 말거나 한 소리를 잘도 내뱉는다. 이미 예전에도 그랬다가 슬그머니 빼돌렸던 단골메뉴라서 입맛 다실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거가 끝난 지 채 두 달도 못 넘기고 각 당을 대표했던 거두들이 마른장마에 허리 꺾인 해바라기 신세로 전락했다. 재인은 야인처럼 네팔에 갔고, 무성은 입이 있어도 소리를 못 내고, 철수는 그 이름값을 또 하려고 철수했으니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국회뿐만 아니라 도의회, 시의회도 못 된 피는 속일 수 없는 모양이다. 후반기 원 구성은 그야말로 진흙탕싸움이었다. 쪽수가 많은 같은 당끼리 서로 자기가 감투를 쓰겠다며 피 터지게 싸웠다. 모 지자체 시의회에서는 의장, 부의장을 아예 일당이 싹쓸이했단다. 4:3의 정당 비율이라서 1표 차가 뻔했지만, 민주주의 방식으로 표결까지 갔단다. 상대 당은 재선의원이 2명이나 있었지만, 생뚱맞게 초선으로 밀어 올려 모양새가 서로 우습게 됐다. 그 지역은 4선의 국회의원과 재선의 시장은 물론 도의원까지도 모두 일당이 12년간 독점한 작은 도시다. 

사정이 이러하니 아무리 강력한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삶고 또 빨아도 그놈의 찌든 때는 좀처럼 벗겨질 리 만무하다. 모 의원의 ‘딸 인턴 채용’ 논란 이후 갑자기 여야의원 보좌관들이 소리 소문도 없이 무더기로 사라졌단다. 인기스타들의 부적절한 스캔들 약발도 다 됐는지 언론과 방송에서는 뜬금없이 간첩을 잡았다며 60년대식 시네마스코프 총천연색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뉴스를 내보내며 특종처럼 뿌려댄다. 그 사이에 홍 변호사의 법조계 게이트, 어버이연합과 전경련 게이트, 지방재정, 맞춤형 보육 등은 꼬리를 감췄고, 법정시한을 넘긴 최저시급 인상안도 살찐 고양이들 등쌀에 6천원대에서 동결될 조짐이다.

찬스를 노린 정의당에서는 그 틈에 ‘살찐 고양이 법’을 슬쩍 밑밥으로 던졌지만, 씨알도 안 먹힐 흰소리에 불과할 전망이다. 대기업 임원 30배, 공공기관 10배,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는 최저임금의 5배를 넘지 못한다는 조목조목 어느 한군데 흠잡을 데 없는 지당한 말씀이다. 상위와 하위 10%의 양극화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무모하게 도전하는 용기가 참 가상타. 이참에 ‘최저임금 1만원’의 발판이 마련될 때까지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들부터 솔선해 특권도 내려놓고 세비도 최저임금의 딱 5배만 챙겨간다면 그야말로 태평성대 아니겠는가.

비가 온 뒤라서 날씨마저 푹푹 찐다. 뭣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는 이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임금이 최저임금’이라는 아재개그 멘트가 똑 부러지게 맞아떨어졌다. 물론 살찐 고양이들이야 알바도 안 해봤으니 알 바도 아닐 것이다. 왕창 비라도 뿌려대려는지 하늘은 오만상 잔뜩 찌푸리고 뜸 들인다. 국회의사당 정문 앞 농성인들 곁에서 촬영하다가 문득 서울 하늘을 올려다보니 남사스럽게 눈물이 핑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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