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선화공주가 매우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구애작전'

서동이 마를 팔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어느 날 우연히 신라의 선화공주가 매우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그후 서동은 선화에 대한 연모의 정을 이기지 못해 기상천외한 구애작전을 개시하게 된다. 풍설(風說)을 만들어내는 한편, 그런 풍설을 기정사실화하는 노래를 유행케 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하는 음유시인이라 불러도 대과가 없다. 그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매우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로 올라와서 마을아이들에게 마를 나눠주니 여러 아이가 그와 친해져 따르게 되었다. 이리하여 그는 동요를 지어 아이들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게 하니, 그 노래는 이러했다.
 
善化公主主隱(선화공주님은)
他密只嫁良置古(남몰래 얼려두고)
薯童房乙(막동집을)
夜矣卯乙抱遣去如(밤에 몰래 안고 간다)

이 노래가 서울로 퍼져 대궐까지 들어가자 모든 관리가 선화공주를 먼 지역으로 귀양보내야 한다며 들고 일어났다. 

그러자 선화공주는 어쩔 수 없이 대궐을 떠나야만 했다. 공주가 먼 길을 나설 무렵에 (어머니인) 왕후가 순금 한 말을 노잣돈으로 내주었다. 

선화공주가 귀양살이할 곳을 향해 가는데 서동이 도중에 뛰어나와 절을 하면서 호위하겠다고 하니, 선화공주는 비록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으나 마음이 끌리고 좋았으므로 그냥 따라오게 하고는 몰래 관계를 한 뒤에, 그의 이름이 서동이란 사실을 알고서 동요의 영험함을 믿게 되었다.

여기에서 서동이 지어 아이들을 부추겨서 부르게 했다는 노래는 일명 '서동요'로 잘 알려진 고대가요다. 3구절 총 25자의 한자로 이루어진 향찰 표기의 가사로서 향가에 속한다.

이 노래는 장차 일어날 일을 미리 예언하는 것으로서, 그런 예언이 미래에 실현될 것임을 담은 주사(呪詞, 일종의 주문)인 동시에 참요(讖謠, 예언의 노래)라고 볼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서동이 의도한 대로 선화공주는 신라의 왕궁에서 쫓겨났다. 그렇게 쫓겨난 공주를 호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접근한 서동은 마침내 그의 몸까지 얻음으로써 아내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선화공주는 서동과 함께 백제에 와서 왕후가 준 금(金)을 내놓고 장차 살림을 장만할 일을 의논하니 서동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이게 뭐요?"라고 물으니, 선화공주가 말하기를 "이건 황금입니다. 이것으로 한평생 부자로 살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서동이 다시 이르기를 "내가 어릴 적 마를 캐던 곳에는 이런 게 흙더미 처럼 쌓여 있소"라고 했다.

선화공주가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면서 "이건 세상에도 다시없는 보물입니다.

낭군이 지금 있는 곳을 알거든 그 보물을 부모님 계신 궁궐로 실어 보내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니, 서동이 "좋소!"라고 대답하고는 이내 금을 끌어 모아 구릉처럼 쌓아놓고는 용화산(龍華山) 사자사(獅子寺) 지명법사(知命法師)의 처소를 찾아가 금을 실어 나를 계책을 물었다. 

그랬더니 법사가 "내가 신력(神力)으로 보낼 수 있으니 금을 가져오너라"라고 말했다.

선화공주가 편지를 써서 금과 함께 사자사 앞에 갖다놓으니 법사가 신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신라 궁중으로 실어다주었다. 

신라 진평왕이 이런 신기한 변화를 이상히 여겨 더욱 존경하면서 항상 편지를 띄워 안부를 물었더니, 서동이 이런 까닭에 백성의 마음을 얻어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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