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묘하다. 투표할 때는 ‘이 사람’이라면 정말 잘할 것 같았던 사람도 명패만 챙기면 ‘역시나’로 변한다. 탁상공론과 꼼수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신통하게 잘도 터득한다. 당적이 다르면 아무리 좋은 안건도 말꼬리 잡고 다리 걸어 일단은 넘어뜨리는 태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막돼먹은 재주도 한둘은 아니다. 보신을 위한 연금, 의정 활동비 인상 등 제 밥그릇 챙길 때는 여야 모두가 불만이 없다. 서민들은 버스와 지하철에서 곤죽이 돼 출퇴근할 때, 에어컨 빵빵한 자가용에서 개기름 번지르르하게 흘리며 목덜미에 석고를 쳐대고 여의도에 들어가면 그 잘난 얼굴 보기도 쉽지 않다. 넘치는 특권은 다 누리며 사는데 여기저기에서 터지는 국민의 불만·불편쯤이야 이젠 알 바도 없다.

선거 때마다 후보자들은 ‘아이가 살기 좋은’ 운운하며 젊은 맘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말캉말캉한 인기 공약들을 제시했다. 그들의 홍보물에는 아이들 안고 환하게 웃으며 맘씨 좋은 아재로 위장한 사진은 필수였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말이 요즘 기가 막히게 딱 맞아 떨어졌다. 마치 만능재주꾼이라도 되는 양 모든 걸 다 할 것처럼 게거품을 토하던 그들의 입은 작심이라도 한 듯 꽉 봉해졌다. 교육은 백년지계인데, 걱정하지 말라던 교육 정책 중 보육이 또다시 맨살을 드러낸 채 웃픈 현실을 보여주며 우왕좌왕이다. 일단 위기만 넘기고 보자는 몸에 밴 주먹구구식으로는 백 년이 가도 실마리가 풀릴 리 없다.

현직 대통령도 대선 당시 TV 연설에서 “보육비와 교육비 걱정도 확실하게 줄이겠습니다. 국가 책임 보육체제를 구축하고 다섯 살까지 맞춤형 무상보육을 하겠습니다”라면서 “출산율을 높여달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 공약이 드디어 7월 1일부터는 고집불통답게 실행으로 옮긴단다. 앞으로 전업주부는 어린이집에 하루 6시간만 아이를 맡겨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주부가 아닌 어린이집에서 먼저 불만이 터졌다.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 회원들이 이틀간 휴원을 선포하고 집단행동으로 항의하며 피켓을 높이 치켜들었다. 지원 보육료를 종일제의 80% 수준이 아닌 예전처럼 지급하라는 요구였다. 얼핏 들으면 얼토당토않은 생떼라고 치부하겠지만, 나랏돈으로 운영하는 그들의 처지에서는 일면 타당한 구석도 없지는 않다.

그런데, 정작 앞으로 나서야 마땅할 정치꾼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뒤꽁무니를 빼고 있다. 처지나 형편이 괜찮은 서울 강남, 잠실 등 대부분 어린이집도 그러거나 말거나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방송이나 언론까지도 보도를 아끼며 썩은 매의 눈알만 요리조리 굴리고 있다. 이래저래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민간어린이집만 괜히 코너에 몰리는 불쌍한 신세로 전락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국내 최대 어린이집 단체인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도 ‘맞춤형 보육 제도개선 및 시행연기’를 요구하며 힘을 보탰다. 땡볕 내리쬐는 거리에는 찌라시처럼 어린이 교육문제가 이리저리 나뒹굴며 발길에 밟힌다.

세상을 거꾸로 돌려봐도 아이를 돌보는 것은 부모가 책임져야 할 당연한 의무다. 그러한 의무를 대행하는 보육교사들은 비록 박봉에도 사명감 하나로 맡겨진 아이들의 대리모가 되어 돌본다. 비교가 다소 무리겠지만, 학교 교사들처럼 미래가 보장된 철밥통 직장도 아니다. 요즘에는 대부분 아들딸 하나씩이니 당연히 집안에서는 공주 아니면 왕자들이기에 온 신경세포를 곤두세워 아이를 돌봐야 한다. 그러한 힘겨움을 이해하며 고마워하는 부모도 예전처럼 그리 많지는 않다.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하려는 의식이 골수 깊이 박혀 이래저래 역겹고 힘들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고 후회한들 때는 이미 늦었다. 진화냐 퇴행이냐 그 선택은 우리 몫이다. 많거나 적거나 피땀 흘린 세금 중에는 국민의 원망과 한숨도 알알이 담겨있음을 명심하시라. 갈 길이 멀고 험할수록 조금은 느린 듯 천천히 걸으며 충분히 고민도 하시라. 아무리 가난해도 교육비만큼은 아낌없이 투자해 아들딸 잘 키워냈던 그 옛날 어르신들의 지혜가 돌이켜 생각하니 참으로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정말 묘한 세상이다. 요즘 한창 뜨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영화제목을 거꾸로 뒤집었더니 딱 들어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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