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이후 시련은 내가 자초했지만, 나를 철 들게 했다"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살지 않겠다. 그때는 골프가 재미없고 지루했다."

무려 12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은 안시현(32·골든블루)은 화장기 없는 민얼굴에 수수한 차림새로 기자를 만나러 왔다.

13년 전인 2003년 열아홉 살 안시현은 '얼짱 골퍼'의 원조였다. 얼굴이 예쁘고 깜찍했고 큰 키에 팔다리는 늘씬했다. 예쁜 골프 선수도 더러 있었고 실력이 뛰어난 골프 선수도 적지 않았지만 둘 다 갖춘 선수는 사실상 안시현이 처음이었다.

13년 전 안시현은 '완판녀'였다. 안시현이 입은 골프웨어와 골프 모자는 전국 매장에서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2003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CJ 나인브릿지 클래식은 안시현을 국내 1호 '얼짱 골퍼'와 '완판녀'로 만든 무대였다. 이듬해 LPGA투어에서 진출해 신인왕까지 차지하면서 안시현은 인생 최고의 시기를 만끽했다.

하지만 내리막길은 너무나 빨리 찾아왔다. 2011년 LPGA투어를 접을 때까지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노는 데 정신이 팔려 훈련을 뒷전이라고들 수군댔다.

유명 연예인과 갑작스러운 결혼 발표에 이어 딸을 낳았다. 결혼은 2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2014년부터 골프채를 다시 잡았지만 2년 동안 그저 그런 성적에 그쳤다. 골프에 회의가 들어 그만둘까 생각한 지 3주 만에 한국 최고 권위의 메이저대회 한국여자오픈 정상에 올랐다.

안시현은 "먼 길을 돌아왔다"고 표현했다. 그는 "스무 살 이후 시련은 모두 내가 자초한 것"이라면서 "시련이 나를 철 들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생계형 프로 골프 선수라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하나뿐인 보물'이라는 다섯 살 딸 그레이스를 제대로 키우는 데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골프를 친다고 말했다.

나이는 들었지만, 샷은 후배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강한 체력을 타고나지 못해 이를 악물고 체력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안시현은 "어릴 때보다 오히려 요즘 더 열심히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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