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을 드나드는 사람이면 매바위가 있는 이 길을 지나야 한다

멀고먼 옛날 외금강기슭 어느 마을에 공가라는 성을 가진 욕심 사나운 지주가 살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악착스러거게 남의것을 빼앗았던지 제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짓던 사람도 이놈의 손에 걸려들기만 하면 얼마 못가서 땅을 떼이고야 말았다.

 그리하여 공지주가 이 마을에 나타난지 몇 해만에는 주변의 땅들이 모두 그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간혹 아직도 끈질기게 제 땅을 가지고 있는 자자공들이 더러 있었는데 공가는 기름진 벌 한가운데 드문드문 배겨있는 그 땅을 볼 때마다 체증이나 걸린 사람처럼 속이 편치않아 오만상을 찌프리곤하였다.

"어떻게 저것들을 마저 내 것으로 만들 수 없을까?"

밤낮으로 이런 궁리를 하던 공가는 마침내 좋은 수를 생각해내었다. 그것은 제 땅을 밟고 다니는 사람들에게서 땅값을 호되게 받아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간혹 소나 다른 집짐승이 논두렁을 좀 밟거나 곡식 잎이라도 할퀴면 그것은 큰 변고라 몇 십 배로 변상을 시킨다. 그래도 되지 않으면 가을에 가서 남의 논두렁에 제집 볏단을 몇 단 슬쩍 옮겨놓았다가 다음날 소동을 일으켜 도적으로 몬 다음 법에 걸어 땅을 통째로 빼앗는 것이었다.

과연 공가의 이런 궁리는 곧 실천으로 옮겨져 마침내 주변의 모든 땅들이 다 제 소유로 되게 되었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해서 땅만이 아니라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제게 필요하다고만 생각되면 꼭 빼앗고야 말았다. 사람들이 그놈을 이리나 승냥이보다 더 악착같은 놈이라고 미워하였지만 그때는 사람위에 권세가 있고 권세위에 또 돈이 있는 세월이라 아무것도 없는 그들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땅을 떼인 많은 사람들이 그놈의 손발 밑에서 소작을 살거나 좋은 금강산을 두고 멀리 떠나게 되었다.
바로 그러한 때 이 금강산 마을에 매를 가지고 다니는 젊은 사냥꾼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가 가지고 있는 매는 크기가 보통 매의 몇 갑절이나 되고 힘은 또 몇 십 배나 세서 아무 짐승이나 마음대로 잡는 신기한 매라고 했다. 

그래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는데 그가 마을에 나타나기 전부터 술렁거렸다.

하늬바람이 사흘만 불면 안가는 데가 없다고 그 소문은 어느새 공지주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런 매가 세상에 있다? 그걸 어떻게 빼앗을 수 없을까..."

그러나 소문은 소문이고 제 눈으로 한번 보아야 속이 시원한지라 곧 사람을 보내서 사냥꾼을 데려오게 하였다. 과연 얼마 후 매를 가진 사냥꾼이 그의 집에 나타났다.

 첫눈에 보기에도 매는 사람만큼이나 큰데 영채 도는 눈과 소뿔같이 단단한 주둥이 그리고 쇠갈고리 같은 발톱과 참대 뿌리 같은 다리, 그 어느 것을 보아도 보통매가 아닌 것이 틀림없었다.

저것이 한번 나래를 펼치고 하늘로 솟아오르면 뭇 짐승들이 공포에 질려 그 자리에 굳어져 옴짝 달싹도 못하고 붙잡힐 것이라는 것을 대번에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남의 것을 보고는 좋다고 해본 적이 없는 공가도 이번만은 저도 모르게 마주 달려 나가며 반색을 했다.

"참 좋은 매를 가지고 있소. 이 매를 어디서 구했소?"
"구한 게 아니라 키웠습니다."

공지주가 매를 부러운 듯 바라보며 말을 걸자 매를 가진 사냥꾼은 이렇게 대답했다.
"키우다니요. 집에서 키웠단 말이요?"

"예, 다섯 대를 내려오며 키웠더니 이런 큰 매가 되었습지요."
"다섯 대?! 다섯 대 만이라... 그래 다섯 대 만 키우면 아무 매고 다 이렇게 크오?"
"아무 매나 다 그런건 아니지요."

"글쎄 그렇겠지. 무슨 방법이 있는 것이 분명한데.. 여보시오, 나한테 그걸 가르쳐 줄 수 없겠소?"
"원, 그럴수 가 있나요. 다 값을 먹여야 하는 건데... 절로는 안 됩니다."


사냥꾼은 이렇게 말하며 곧 사냥을 가야겠다고 성큼성큼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공지주는 뒤에서 멍청히 그를 바라보다가 사냥구경이나 하자고 급히 그의 뒤를 따라 나갔다.

 그가 산기슭으로 달려 나갔을 때는 벌써 매가 하늘에 솟아올랐다. 매는 푸른 창공 에 높이 떠서 거센 나래를 기웃거리며 유유히 산상을 떠돌고 있었다.

 이따금 무엇인가 발견한 듯 고개를 기웃하기도 하고 또는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우로, 아래로 떠돌며 저 높은 하늘을 제 세상 인 듯 날았다.

신기한 매의 사냥을 구경하느라고 온 마을 사람들이 나왔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여기저기서 꺽꺽거리던 뭇 꿩들의 울음소리는 간곳이 없었다. 갑자기 매가 한쪽으로 기웃거리더니 쏜살같이 아래로 내려 꽂혔다. 사람들이 와- 소리를 지르며 그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 가지도 못해서 벌써 매는 커다란 삵을 한 마리 잡아 주인한테로 날아왔다.

"삵이다, 삵을 잡았다!"
하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왜 이왕이면 사람이 먹을 걸 잡지... 거 맛좋은 고기 같은걸 말이지..."

공가가 뒤에서 멍하니 바라보다가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나오는 사냥꾼을 보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는 지금 저 놀라운 새를 보자 속에서 온갖 욕심과 심술이 되살아나서 견딜 수 가 없었던 것이다.

"꿩 같은 것 말입니까?"  하고 사냥꾼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참, 그 지주님 발밑에 한 마리 숨어있군요. 얼른 덮치시오."

하고 말했다. 공가가 그게 무슨 수리냐 하면서도 미심결에 발밑을 내려다보니 과연 꽁지를 바싹 추켜든 꿩 한마리가 엎드려 있었다.

"잡았다. 꿩 잡았다."

공가는 그 자리에 풀썩 엎드리며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잡고 보니 정말 꿩이었다. 사람들이 하도 우습고 신기해서 그리로 모여드는데 사냥꾼은 어디에 또 무엇이 있을지 모르니 다른 데를 찾아보라고 하였다. 

 저마다 숲을 뒤지는데 여기서는 꿩이요, 저기서는 토끼요 하면서 모두가 한 마리씩 잡아냈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그것을 사냥꾼에게 가져다주니 그는 잡은 사람이나 가져가라 하고는 받지 않았다. 

그래서 짐승을 한 마리씩 얻은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집으로 가자고 청하는데 공가는 바로 이때다 하고 사냥꾼을 제가 붙들었다.

그는 싫다고 하는 사냥꾼을 기어이 붙들고 자기 집으로 갔다. 그리고는 술상 한상 잘 차려놓고 잔을 들이대면서 어떻게 그놈의 매를 빼앗을 수 없을까 하는 궁리를 하였다.

공지주 놈의 이런 속셈을 아는 동네사람들은 마음을 조이며 근심들을 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공가는 어떻게든 사냥꾼에게 더 바싹 붙어서 간을 빼내자고 별렀다.

다음날 공가는 같이 사냥을 따라 나가서 오늘은 노루를 잡아보라고 하였다. 매가 정말 아무 짐승이나 다 잡는지 제 눈으로 보고 싶어서였다.

"노루요? 어디 잡아봅시다."

사냥꾼은 이렇게 한마디 대답하고 사냥을 시작했는데 과연 그날 노루를 세 마리나 잡았다. 공지주는 더 참을 수 가 없어서 그날도 사냥꾼을 제집으로 끌고 가서 한상 잘 차린 다음 제 생각을 곧바로 들이대었다.

"여보게, 자네가 우리 집에 와서 살지 않겠나. 뭐 임자보고 힘든 일을 하라는 게 아니라 나하고 같이 사냥이나 다니면서 말벗이나 해주고 이렇게 술친구나 해달란 말일세. 어떤가?"

공가가 살살 웃음을 치면서 잔을 붓는데 젊은 사냥꾼은 그대로 꿀꺽꿀꺽 받아 마신다. 그때 잔뜩 취했는데 그중에도 정신은 있는지
"말씀이 고맙기는 합니다만 전 그럴 수가 없습니다. 우리 집 형제가 아홉인데 또 세간난 조카가 스물이라 도합 스물아홉세대가 땅 한때기 없이 이 매 한 마리를 믿고 삽니다."
하고 대답했다. 

공가가 하도 어이가 없어 멍하니 바라보다가
"아니 스물아홉식구가 아니라 스물아홉세대가 매 한 마리에 매어 살아? 그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여."
"얼마든지 먹고 살지요. 고기를 먹고 싶으면 하루에 노루를 몇 마리씩 잡지요. 또 곰을 잡으면 세상에 웅담보다 더 귀한 약이 어디 있나요. 게다가 금강산 녹각이요, 웅담이요 하면 다른데서 나는 것보다 그 값이 몇 갑절 나가는데 스물아홉세대가 아니라 이백아흔 세대라도 먹고 살수 있지요."

"그래 저 매가 사슴이나 곰도 잡는단 말인가?"


"내가 바로 그래서 오지 않았습니까. 그까짓 노루나 꿩이나 잡자면 무엇 하러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공가가 듣고 보니 더 참을 길이 없는지라 상을 탕 치면서


"다 알겠네. 그러니 걱정할게 뭐 있나. 자네네 스물아홉세대를 다 이리로 데려오게. 내 다른 작인들을 내쫓고서라도 자네 식구들에게 내 땅을 내줄 터이니 붙이도록 하게."
하였다.

"원 그럴 법이 있나요. 농사를 안 짓고도 살 수 있는데 왜 구태여 남의 땅을 부치며 고생을 해요. 혹시 땅을 아예 넘겨준다면 몰라도..."

"땅을 넘겨준다면 매를 나한테 주겠나?"


"그런다면 어디 생각 좀 해봅시다."

사냥꾼이 이렇게 말하는데 막상 그만한 땅을 떼어준다는 데는 가슴이 섬뜩하였다. 그러면서도 매에 대한 욕심은 그칠 수가 없는지라
"여보, 매 한 마리에 서른 세대가 먹고 살 땅을 바꾼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정신이 있소?"하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자 사냥꾼은 두리번두리번 행장을 찾으며

"그러기에 내가 언제 바꾸자고 했소. 사슴이나 곰을 몇 마리 잡으면 그만한 밑천은 몇일 동안에 장만할 터인데 내가 밑지면 밑졌지 주인님이 밑질 것 같소?"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였다. 그러자 공가는 황황히 그를 다시 붙들어 앉혔다.

생각해보건대 매주인의 말마따나 그놈만 잘 써먹으면 떼여준 땅 밑천은 당장 나올 것 같고 거기다 2~3년 안짝이면 또 다 제 손으로 빼앗을 수 있는 땅이라 별로 아까울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공지주는 제 땅문서를 꺼내놓고 매 주인에게 넘겨주기로 했는데 그는 어떻게 알았는지 영락없이 좋은 땅만 내놓으라 했다. 하는 수 없이 달라는 대로 넘겨주니 사냥꾼은 땅문서를 품에 넣고 그대로 집을 나섰다.

그날 밤 마을에는 이상한 일이 있었는데 그렇게 매를 가지고 소문을 내던 사냥꾼이 집집을 찾아다니며 땅문서를 한 장씩 나누어주면서 매를 팔아서 산 땅문서이니 절대로 빼앗기지 말라고 당부를 하고는 종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공지주는 그것도 모르고 땅을 떼어준 서운한 생각에 밤새도록 잠을 못 들고 뒤치락거리다가 아침 일찍 머슴들을 데리고 금강산 깊은 골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당장 곰을 잡아서 그 봉창을 하리라 단단히 벼른 것이다. 매도 새 주인의 마음을 알았다는 듯 그의 어깨위에서 퍼덕퍼덕 깃을 치며 흥을 돋구었다.

드디어 매가 하늘에 올랐다. 그놈은 거대한 나래를 쭉 펼치고 삐죽삐죽 금강산 높은 봉우리를 에돌며 골짜기를 샅샅이 굽어본다.

"곰을 잡아라. 웅담이 제일 값나가는 약이다. 꼭 곰을 잡아라."

공가는 푸른창공을 우러르면 이렇게 부르짖었다. 과연 몇 바퀴 공중을 선회하던 매가 몸을 기웃하더니 외금강 쪽으로 쏜살같이 내리꽂혔다. 공가가 바위부리에 걸리고 나무등걸에 옷을 찢기며 그쪽으로 달려가는데 아무리 가 봐도 매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머슴들을 때려 몰고 제자신도 산위를 오르고 내리며 찾아보았으나 매는 나타나지 않았다. 공가가 하도 어이가 없고 분해서 이를 갈며 산을 내려오는데 왠걸 매는 바로 큰 길옆 높지도 않은 봉우리에 떡 버티고 앉아있는 것이다. 하도 반가워서 소리쳐 부르나 왠 일 인지 돌아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서 그 곁에까지 다가갔는데 그래도 까딱 않고 앉아있었다. 하도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돌을 던져보니 갑자기 매의 몸이 불쑥 커졌다. 

다시 한번 던져보니 또 그만큼 커진다. 공가가 기겁을 하면 달려 내려오다가 미심쩍은 생각이 들어 돌아다보니 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있는데 눈을 부릅뜨고 당장 부리로 내려 쪼을듯 사납게 자기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공가는 악! 소리를 지르면 엎어지고 자빠지며 몇 번을 뒹굴다가 마을로 내려왔다.

그때부터 매는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있는데 욕심 사나운 공가가 아쉬움을 이기지 못하여 매를 올려다 볼 때마다 매는 무섭게 자기를 쏘아보곤 했다. 

그때마다 공가는 매가 자기를 덮치는 것 같아 오싹오싹 소름이 돋곤 했는데 그것으로 해서 시름시름 앓다가 얼마 못가서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때까지 공가는 사냥꾼이 누구인지 몰랐고 매 또한 어떤 짐승인지 몰랐다.

과연 금강산 마을에 나타났던 매사냥꾼은 누구였겠는가. 아직까지 그가 누구였는지는 딱히 아는 사람이 없다.

 다만 그때 땅을 받은 사람들의 추측에 의하여 짐작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즉 그는 금강산속에 있는 유명한 도사인데 심술궂고 욕심 사나운 공가놈에 대한 백성들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하여 잠깐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 말이 틀림없다면 도사는 아마 세상에 깨끗하고 신선한 생령들만 살고 있는 금강산에 짐승만도 못한 욕심 사나운 지주가 살고 있는 것이 마음에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만들어 보낸 매는 지금도 금강산으로 들어오는 첫 입구에 있는 높지 않은 봉우리에서 오고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금강산을 드나드는 사람이면 누구나 매바위가 있는 이 길을 지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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