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재난ㆍ재해ㆍ안전관리 관련 정책이 수년간 우선순위에서 밀려 홀대를 받았고, 주요 정책 과제로 선정된 경우에도 실행력을 확보하지 못해 흐지부지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연합뉴스가 국무총리실과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 국토교통부, 해양경찰청 등 재난 관련 5개 부처의 최근 8년간 연도별 업무계획보고 내용을 분석한 결과, 세월호 참사 이면에는 장기간 누적된 안전관리정책 홀대 풍토가 있었다. 

    재난관리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2010년, 2013년 업무보고 등에서 관계기관 합동상황실을 설치하고, 경찰, 소방 등 기관별로 운영 중인 무선통신망을 통합ㆍ연계해 현장 대응 혼선을 방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해상교통관제센터(VTS) 관할권은 해수부와 해경으로 쪼개져 제구실하지 못했다. 침몰 사고 후에는 안행부, 교육부, 해경 산하에 사고대책본부가 세워졌지만 협업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혼란이 가중됐다. 해양안전정책은 해수부의 운명에 따라 부침을 겪었다. 해수부는 국토해양부로 통합되기 전인 2007년 업무보고에서 '해양안전관리시스템 선진화'를 주요 정책 과제로 제시했지만 국토부로 편입된 이후인 2008년 업무보고에는 해양안전 관련 대목이 단 몇 줄에 불과했다. 2009년과 2011년에는 4대강 사업 등 토건사업에 무게중심이 쏠리면서 해양안전 관련 언급이 아예 사라졌다. 2012년 처음으로 '국가 해사안전기본계획'을 수립하는 성과가 있었으나 정권 말기인데다 해수부 부활 논의가 대두하면서 주목받지 못했다. 해경은 2013년과 2014년 업무보고에서 다중이용선박 안전관리 매뉴얼 제정, 해상교통 저해사범단속 등 원론적인 정책을 반복적으로 제시했지만 세월호 사고에서는 전혀 가동되지 않았다. 국무총리실은 작년 10월 "국가재난관리는 정부의 일차적 기능"이라면서 총체적 국가재난관리조직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이름을 바꾸면서 국민 안전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제시했으나 실천력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의 재해ㆍ재난은 대형화, 다양화, 복합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안전관리 시스템은 세월호가 침몰한 지 9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몇 명이 탑승했는지, 얼마나 많은 화물을 실었는지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으로는 국민의 안전한 삶을 보장할 수 없다. 재난, 재해가 있을 때마다 피해자들이, 가족들이 칸막이 없는 체육관에 방치되고, 정부를 믿지 못해 울부짖고,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벌이도록 해서는 안 된다.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악성댓글이 판치는 일이 되풀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안전한 사회 건설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문제점들을 분석해서 하나하나 대책을 마련해 가야 한다. 재난전문가와 구조전문가를 키워내고, 다원화된 안전관리 기능을 통합하고, 여러 부처에 분산돼 있는 관련 법령 및 기준을 정비해야 한다. 정쟁에 몰두하며 100여 건의 안전 관련 입법을 방치하다 뒤늦게 법안 처리에 나선 정치권의 반성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번 세월호 사건을 통해 분출된 성숙한 시민의식, '내 일'인 것처럼 공명하며 도움의 손길을 내민, 보다 나은 공동체를 향한 국민적 에너지를 제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슬픔 속에서도 차분하고 치밀하게 장기 대책을 마련해 어떤 재난, 재해에도 국민적, 국가적 피해는 최소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비극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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