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예술영화의 경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주국제영화제가 다음 달 1일 개막한다.

제15회를 맞은 올해는 44개국에서 출품된 181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다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영화제에서 상영할 영화를 선별해 초청하는 프로그래머들의 도움으로 5편을 골라봤다.

◇ 포항

실종된 아버지를 찾고자 고향으로 돌아온 남자는 표류하는 듯한 삶의 궤적 속에 점점 지쳐간다. 그런 남자의 모습은 마치 그의 아버지가 좌표를 잃고 바다의 어느 한 지점에서 실종된 것처럼 불안정하다.

모현신 감독은 별다른 사건 없이 매일 반복되는 노동과 가난의 흔적을 긴 호흡의 화면에 담는다. 주연을 맡은 배우 고관재는 특히 이런 화면 스타일에 어울리는 기운을 뿜어낸다.

현실의 조각보다는 현실의 덩어리를, 극적으로 가공된 진실보다는 기록영화적 소박성으로 접근하려는 스타일의 힘을 느끼게 한다. 한국경쟁부문. 상영시간 93분.

 

◇ 언노운 노운

부시 정부에서 국방부장관을 지낸 도널드 럼즈펠드의 이면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재임 시절 럼즈펠드가 쓴 쪽 메모, 다량의 인터뷰를 근간으로 앎과 무지, 진실과 허구의 관계를 묻는 작품이다.

영화는 사담 후세인과 이라크전쟁,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 9·11과 테러리즘, 럼즈펠드와 미국 현대사를 종횡으로 오간다.

럼즈펠드는 영화에서 호전적 대외 이미지와 달리 사려 깊은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이 럼즈펠드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그는 자신이 아는 사실에 대해서 무지하다(Unknown Known).

2013년 작고한 미국의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에게 헌정된 작품으로 에롤 모리스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다.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마스터즈 부문. 상영시간 104분.


◇ 라스트 무비

필리핀의 기대주 라야 마틴 감독과 캐나다 영화 비평지 '시네마스코프'의 편집장 마크 페란슨이 공동 연출했다. 이들은 9대의 카메라와 16㎜·수퍼8㎜·HD 디지털·35㎜ 등 서로 다른 일곱 가지 촬영 포맷을 사용해 촬영했다.

'영화의 끝에 도달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화두에 골몰한 두 감독은 1971년 데니스 호퍼가 연출한 동명 영화 '라스트무비'를 텍스트로 삼아 그들의 생각을 전개한다.

호퍼가 애초에 '라스트무비'를 찍고자 했던 멕시코를 무대로 이들 감독은 폐허가 된 지역을 떠도는 백인 남자의 혼란스러운 여정을 담았다. 익스팬디드 시네마 부문. 상영시간 88분.

◇ 레옹 M의 보트가 처음으로 뫼즈 강을 내려갈 때

벨기에의 거장 다르덴 형제가 1979년 선보인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1960년 벨기에의 산업 도시 세랭에서 벌어졌던 철강 공장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다뤘다.

다르덴 형제 특유의 과묵하면서도 통렬한 영화적 스타일의 단초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노동자들의 저항에 관한 시적인 묘사가 인상적이다.

극영화로 형식을 바꾼 이후 만들어진 다르덴 형제의 대표작 '로제타'(1999)와의 연관성을 찾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스페셜 포커스 부문. 상영시간 40분.

◇ 인 데어 스킨

딸을 잃고 비탄에 빠진 메리와 마크는 어린 아들 브렌든과 함께 번잡한 도시를 떠나 시골의 외딴 별장을 찾는다.

잠시라도 평온을 찾으려던 부부의 바람은 새벽부터 땔감을 주겠다며 찾아온 이웃집 사코우스키 부부의 방문으로 금세 무너진다.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퍼니게임'(1997)이 연상되는 사이코 스릴러. 영화는 사이코 스릴러와 폐쇄 공포물의 장르 공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가해자를 피해자와 똑같은 형태의 3인 가족으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신선함을 안긴다. 제레미 파워 레김발 감독이 연출했다. 미드나잇 인 시네마 부문. 상영시간 9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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