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란 첫승의 감격 올해도 느낄 수 없어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이 왜군에 첫승을 거뒀던 옥포대첩. 물론 승리의 주역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전라좌수영군과 경상우수영군의 연합군이었다.
 
하지만 말이 연합군이지 실상은 전라좌수영군이 전력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전라좌수영군이 동원한 배는 판옥선과 어선을 포함해 모두 85척. 경상우수영군은 고작 5척이었다. 거북선은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경상우수사 원균은 초장부터 전의를 상실한 채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왜군이 부산진과 동래성을 함락시키고 다대포 등을 석권하자 전선과 무기 등을 바닷속에 처넣고 수군 1만명도 자체 해산해버렸다.
 
원균이 경상우수영 수군을 스스로 해체한 데는 그 나름의 변명거리가 있었다. 적의 침입에 대비한 준비가 전혀 안돼 있었던 것. 전력이 미약할 뿐 아니라 훈련도 돼 있지 않았고 군량미마저 바닥을 드러냈다. 그야말로 리더십 부재의 오합지졸이었던 셈이다.
 
"부산 앞바다 일대에 일본 전선 500여 척이 나타나 수영과 병영을 비롯한 모든 진보를 함락시켰습니다. 귀도의 군선을 남김없이 징발해 당포 앞바다로 달려와주시기 바랍니다."
 
육지로 숨어 적을 피하던 원균은 수하인 옥포 만호 이운룡의 제의를 받아들여 이순신 장군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경상감사 김수의 구원 요청도 받은 이순신 장군은 경상도 지원을 허락해달라는 장계를 조정에 보낸다. 경상도 지역은 자신의 관할구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경상우수영 관할지역에 대한 지원을 놓고 내부 논란도 나왔다. 이순신 장군 휘하의 장수 대부분은 "우리 구역 지키기에도 병력이 모자라는 판국에 남의 구역을 응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반대했다. 오만했던 원균에 대한 거부감이 그만큼 컸던 것.
 
이에 녹도 만호 정운 등은 군사회의에서 눈물로써 지원을 건의한다.

"적을 막는 일에 구역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적의 예봉을 미리 꺾어놓으면 우리 구역의 방어가 저절로 이뤄집니다." 이순신 장군은 마침내 출병 결단을 내린다.
 
출병한 전라우수영군이 약속 시간에 당포 앞에서 기다렸으나 경상우수영군은 보이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에 나타난 원균이 끌고 나온 배는 달랑 한 척. 두 지휘관이 작전회의를 하고 있을 때 겨우 4척이 더 나왔다.
 
세 시간 동안 치러진 옥포 앞마다 격전에서 연합군은 대승을 거둔다. 부딪치기 작전을 구사한 연합군은 적선을 이리저리 들이받으며 한 척 한 척 침몰시켜나갔다. 판옥선의 위력이다. 침몰하거나 불탄 적선은 26척. 전라좌수영군은 내친김에 합포 앞바다까지 적선을 추격해 5척을 불살라버린다.
 

▲ <연합뉴스 제공>


이처럼 통쾌하고 역사적인 옥포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열리는 축제가 바로 옥포대첩기념제전이다. 거제시는 임진왜란 때 반전의 계기가 됐던 옥포대첩의 의미를 되새기는 축제를 매년 6월에 열어왔다. 올해로 53회째.
 
안타깝게도 이번 옥포대첩기념제전은 볼 수 없게 됐다. 광풍처럼 전국을 휘청거리게 하는 메르스 영향 때문이다. 거제시는 12일과 13일, 그리고 16일에 옥포중앙공원에서 시민노래자랑, 불꽃놀이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역사적 전승을 축하하고자 했으나 난데없는 메르스 격랑에 막혀 중도 무산됐다.
 
면면히 이어져오던 옥포대첩기념제전이 개최를 앞두고 돌연 취소되기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제52회 축제가 무산된 데 이어 올해 제53회 축제마저 메르스 파문 때문에 열리지 못하게 된다. 주최측은 조용히 제례만이라도 봉행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메르스 파문으로 취소되거나 연기된 축제는 옥포대첩뿐 아니다. 이달의 대표적 문화관광축제인 한산모시문화제를 비롯해 '증평 들노래 축제', '신안병어랑 농수산물 장터축제', '당진 해나루 황토감자축제', '묵호항 싱싱 수산물 축제' 등이 줄줄이 취소 또는 연기돼 축제판마저 갈수록 썰렁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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