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화산활동이 일어났던 지역이라고 하면 제주도나 울릉도를 떠올린다. 섬이 아닌, 서울 근교에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현무암 협곡 지대가 있으니 바로 한탄강이다. 포천시는 한탄강 일대에 형성된 현무암 협곡 가운데 빼어난 경치를 가진 여덟 곳을 꼽아 한탄강 8경을 선정했다. 일반적인 강변 풍광과는 사뭇 다른 한탄강 8경은 특이한 지형 덕분에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가 되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 지역이 아직도 오염 없는 원형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가장 젊은 땅

한탄강에 현무암 협곡이 형성된 것은 약 27만 년 전으로 신생대 제4기에 해당된다. 한반도 다른 지역과 비교해 가장 늦게 형성된, 젊은 땅인 셈이다. 제주도나 울릉도가 용암 분출 후 화산이 만들어진 것과는 달리 한탄강 일대는 용암이 넓게 흘러나가 용암평원이 형성되었고, 이후 물길이 용암평원의 약한 부위를 타고 흐르면서 침식이 일어나 지금과 같은 좁고 깊은 협곡이 만들어졌다. 한탄강 곳곳에서 주상절리, 판상절리, 그루브 등을 관찰할 수 있어 교과서와 연계한 지질체험, 학술적인 지질탐사 여행지로 제격이다.

한탄강 최고의 명승지로 꼽히는 고석정은 철원 땅에 있지만 포천 경계 안에도 그 못지않은 비경이 많다. 상류에서 하류 쪽으로 가면서 제1경 한탄강 대교천 현무암 협곡, 제2경 샘소, 제3경 화적연, 제4경 멍우리협곡, 제5경 교동 가마소, 제6경 비둘기낭폭포, 제7경 구라이골, 제8경 베개용암 등 여덟 곳을 뽑아 포천 한탄강 8경을 선정했다. 

제1경은 한탄강 대교천 현무암 협곡이다. 명칭이 길어 어렵게 느껴지는데 풀어보면 한탄강으로 흘러드는 지류인 대교천에 형성된 현무암 협곡이라는 말이다. 계곡이 좁고 깊어서 협곡이라 한다. 이곳은 경치도 빼어나고 지질학적으로도 가치가 높아 지난 2004년 천연기념물(제436호)로 지정됐다. 해당 구간은 길이 약 1.5㎞이다. 폭이 좁은 곳은 25m, 넓은 곳이라고 해도 40m 정도다. 협곡의 높이는 약 30m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상당한 깊이다. 협곡 양쪽으로 현무암 용암층이 두꺼워서 기둥 모양의 주상절리, 수평으로 쪼개진 판상절리, 부채꼴 모양의 방사상절리 등 다양한 형태의 절리를 관찰할 수 있다. 부챗살을 펼친 듯한 절벽은 예부터 부채바위로 불린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면 철원 경계를 넘어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대교천이 철원과 포천의 경계선이다 보니 목적지는 포천이지만 주차는 철원에 한다. 입구에 세워둔 안내판을 읽어보고 서바이벌 체험장 옆으로 난 경사진 길을 따라 내려간다. 구멍이 숭숭 뚫린 검은 바위들이 이곳이 현무암 지대임을 알려준다. 하류로 조금 이동하니 부채바위가 있는 주상절리 절벽이 나온다. 거대한 칼로 돌산을 베어낸 듯한 수직 절벽이 압도적이다. 부채바위도 이채롭지만 알록달록한 바위 빛깔도 범상치 않다.

멍들라, 술 먹고 가지 마라

제2경은 지나치고 제3경 화적연으로 향한다. 강 쪽으로 고개를 쭉 내민 형상의 큰 바위가 독특한 화적연은 그 모습이 볏단을 쌓아 올린 것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바위 앞으로 연못 같은 큰 웅덩이가 형성돼 있는데 여기에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한 농부가 3년 가뭄으로 흉년이 들자 물가에 앉아 "이 많은 물을 두고도 곡식을 말려 죽여야 하느냐? 용도 3년을 내리 잠만 자는가 보다"라며 원망했다. 그러자 곧 물이 뒤집히며 용 한 마리가 나와 하늘로 올라갔고, 그날부터 비가 내려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이후 가뭄이 들면 화적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제4경 멍우리협곡은 약 4㎞에 이르는 구간으로 높은 곳에서 조망할 수 있는 조망지가 두 곳 설치돼 있다. 절벽이 높고 가팔라서 예부터 어른들이 "술 먹고 가지 마라"고 당부했다는 곳이다. 멍우리라는 이름도 조심하지 않고 넘어져 몸에 멍우리(멍)가 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멍우리 1, 2조망지는 좁은 임도에 있어서 마을에 주차하고 걸어가야 한다. 화적연을 보고 멍우리협곡 조망지를 지나 교동가마소에 이르는 한탄강 여울길의 한 구간도 걸을 만하다.

제5경 교동가마소는 여름철 물이 많을 때 찾아야 제멋을 느낄 수 있다. 한탄강 지류인 건지천 하류에 형성된 현무암 계곡으로 소의 모양이 가마솥처럼 생겼다 하여 가마소다. 평평한 대지를 흐르던 시냇물이 갑자기 폭포로 떨어져 내리고, 가마소 옆으로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바위들이 몸매를 자랑하는 형상이다. 물살에 현무암이 밭이랑처럼 구불구불하게 깎인 그루브가 인상적이다.

비둘기가 둥지 틀었던 비둘기낭폭포

제6경 비둘기낭폭포는 8경 중 가장 인기 있는 곳이다. 드라마 <선덕여왕>, <추노>, 영화 <최종병기 활> 등의 배경지로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진 탓이다. 예부터 수백 마리 산비둘기가 서식해 비둘기낭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지금은 보기 힘들다. 지난해까지는 폭포 아래까지 내려가 물에 들어갈 수도 있었는데, 최근 천연기념물(제537호)로 지정되면서 보호 차원에서 내려가는 길을 막았다. 폭포 주변을 굽어볼 수 있는 계단과 데크가 설치돼 있어 주상절리 협곡과 움푹 팬 동굴을 감상하기에는 충분하다.

폭포 상류 쪽은 논 옆으로 개울이 흐르는 정도로 평평하다가 갑자기 땅이 푹 꺼지면서 폭포가 떨어진다. 하류 쪽으로는 높이 20~30m의 수직 절벽으로 된 협곡이 형성돼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신비함이 느껴진다. 드라마 속 한 장면을 떠올리며 비둘기낭폭포를 찾았다가는 실망하기 십상이다. 요즘은 갈수기라서 폭포에서 물이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는다. 비가 많이 내린 직후나 장마철에 찾아야 비둘기낭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입구에 포천시청에서 관리하는 오토캠핑장이 있는데, 요즘 캠핑장 시설을 확대하고 야생화 공원을 조성하는 공사가 한창이라 들어가는 길이 다소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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