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권 최대 연중행사인 성지순례 '하지' 때면 수백만 명의 이슬람교도가 사우디아라비아 성지 메카로 몰린다.

워낙 많은 순례자가 한 번에 밀려들다 보니 사람들이 인파에 밟혀 죽는 사고가 종종 일어났다. 2006년에는 무려 300명 이상이나 사망했다.

이에 사우디아라비아 지도자들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과학자에게 군중의 움직임을 동영상으로 찍어 연구하게 했다.

연구자들은 군중의 밀도 변화와 개인 움직임의 속도 등을 면밀히 분석했다. 인파의 흐름이 걷잡을 수 없게 되는 지점을 포착해 나갔다.

이어 그들은 인파가 집중적으로 몰리는 장소에 추가로 통행료를 설치했고 그 시간에 순례자의 이동도 통제했다. 이후 사고는 크게 줄었다.

연구자들이 주목한 부분은 '흐름'이었다. 일관성 없는 현상처럼 보이는 흐름의 이면에서 원리를 찾아 핵심 포인트를 장악한 것이다. 이런 식의 연구는 주식 시장, 도로 교통 등 현대 사회의 다른 여러 분야에도 접목할 수 있다.

저명한 과학저술가 필립 볼이 쓴 3부작 '모양'(Shapes) '흐름'(Flow) '가지'(Branches)는 형태학이라는 잣대로 자연과 사회의 관계를 흥미롭게 살펴본 과학 시리즈다. 옥스퍼드대 화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볼은 과학 잡지 '네이처'에서 20여년 간 물리·화학 분야의 편집자와 편집 고문으로 일했다.

'모양'의 주제는 '형태의 자발적 발생'이다. 얼룩말의 줄무늬, 나비 날개 무늬, 해파리의 형태 등 자연 곳곳에서 스스로 발생한 사례와 원리를 살펴본다.

심장 부정맥이 일어날 때 관찰되는 나선형 패턴은 물에 떨어뜨린 잉크 방울이 확산과 응축하는 모양과 비슷하다는 설명 등을 전한다. 이런 나선형 패턴을 연구해 심장이 멈추기 전에 일으키는 경고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흐름'에서는 하지 때 이슬람교도의 움직임처럼 다양한 형태들이 변화하는 방식과 이를 예측하려는 과학적 시도를 담았다.

'가지'는 다양한 형태들이 서로 연결되는 방식을 토대로 자연 세계와 인간 사회의 사례를 설명한 책이다. 자유자재로 연결되면서 급속하게 확장하는 인터넷망 등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사이언스북스. '모양'은 조민웅 옮김, 428쪽·2만원. '흐름'은 김지선 옮김, 272쪽·1만6천원. '가지'는 김명남 옮김, 320쪽·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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