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게 흐르는 현의 노래가 심금을 울렸다. 첫 내한 공연 무대에 선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는 먼저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뜻으로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3번 중 '에어'(Air)를 연주했다. 'G선상의 아리아'라 불리는 이 유명한 선율이 이처럼 슬프고 아름다웠던가. 놀랄 만큼 정제된 현악의 선율은 최근의 사고로 슬픔에 빠진 이들의 마음을 위로해줬다.

곧이어 베토벤의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서곡이 연주되자 데이비드 진먼이 이끄는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가 본격적으로 놀라운 기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신기한 소리로 가득한 그들의 연주는 '이상적인 음향효과를 위한 연구 보고서'라 해도 좋을 것 같다.

바이올리니스트의 활을 올릴 것인지 내릴 것인지, 타악기를 연주할 때 어떤 모양의 채로 어느 부분을 칠 것인지, 한 음의 음가를 다 채워 연주할 것인지 아니면 짧게 끊어 연주할 것인지 등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그들이 만들어낸 음 하나하나에서 소리에 대한 철저한 연구 과정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듯했다.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서곡을 여는 짧은 코드 하나도 범상치 않았다. 으뜸 화음으로 시작하지 않아 더욱 충격적인 첫 코드는 팀파니의 건조하면서도 강한 음색 덕분에 매우 강한 인상을 줬다.

팀파니스트는 전반부에 연주된 베토벤의 작품에선 크기가 작은 팀파니와 나무 채를 사용해 짧고 강력한 울림을 만들어내곤 했는데, 이는 후반부에 연주될 브람스의 교향곡과 음향적인 차이를 두기 위한 것 같았다.

현악기 군도 제1바이올린 섹션만 10명 정도로 그 규모를 줄여서 가볍고 투명한 음색을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느린 서주에서 빠른 주부로 넘어가는 그 아슬아슬한 순간에도 제1바이올린은 결코 흐트러짐이 없었다.

데이비드 진먼의 지휘는 노련하고 또한 치밀했다. 베토벤 서곡에서 2분의 2박자로 된 빠른 주부에서도 그는 한 마디를 두 박으로 지휘하는 대신 한 박으로 지휘해 선율이 더욱 날렵하게 흐르도록 유도하는가 하면 다른 악기 소리에 가려지곤 하는 플루트의 선율을 돋보이게 해 음악적 흥미를 자아내기도 했다.

브람스의 교향곡 4번에서도 작품 곳곳에서 진먼의 세심한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1악장에서 첼로에 이어 제1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제2주제에서 선율선의 끈끈한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나란히 앉은 두 연주자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활을 긋도록 한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대개 활을 내려그으면 음량이 자연스럽게 줄어들기 마련이고 활을 올려 그으면 음량이 점점 커진다. 그러나 한 연주자가 활을 내리는 동안 다른 연주는 활을 올려 연주하게 되면 전체적으로 올림활과 내림활의 특성이 없어지면서 선율의 긴장감을 끊임없이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과감한 시도를 서슴지 않는 지휘자와 단원들의 실험정신이 놀라웠다.

무엇보다 브람스 교향곡에선 충실하고 풍부한 음색을 들려준 중저음 현악기군과 플루트 수석과 바순 수석 등 목관 주자들의 솔로가 돋보였다. 3악장에서는 트라이앵글의 잔향 하나까지 신경을 쓰며 세심하게 연주에 임하는 타악기 주자, 그리고 4악장에서 마치 한몸인 양 음량 균형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코랄 선율을 연주하는 세 명의 트롬본 주자 등 적극적이고 성실하게 연주에 임하는 단원들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웠다.

이번 공연의 협연자로 나선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는, 그 역시 이상적인 음향의 탐구자라는 점에서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와 매우 잘 어울렸다.

그가 들려준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통상적이고 전형적인 해석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1악장은 마치 후반부의 흥미로운 카덴차를 향한 전주곡인 듯했으며 3악장에선 카덴차가 아닌 부분에서도 카덴차 풍의 즉흥 연주처럼 느껴졌다.

흔히 카덴차는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 연주 없이 독주자 홀로 기량을 과시하는 부분이라 알려졌으나 이번 공연에선 그렇지 않았다. 크레머는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의 카덴차로 자주 채택되곤 하는 크라이슬러의 카덴차 대신 빅토르 키시네의 카덴차를 선택했다.

1악장의 카덴차에선 팀파니와 관악기, 그리고 무대 뒤 큰북 연주까지 가세하는 등 카덴차의 관례를 깬 파격의 연속으로 관객들의 흥미를 끌었다.

최고의 소리를 위한 탐구정신을 보여준 기돈 크레머와 데이비드 진먼이 이끄는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충실한 공연은 귀를 위한 최고의 성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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