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윤 기자
홍정윤 기자.

[일간경기=홍정윤 기자] 지난 11월8일 김동연 경기도 도지사는 SNS에 ‘사진 한 장의 무게, 한없이 무겁습니다’라는 글을 게재했다.

그는 ‘한 희생자분의 어머님께서 영정사진을 경기도청 합동분향소에 둘 수 있냐고 물어보셨다. 사랑하는 딸과의 이별 시간이 고작 하루였던 게 너무 아쉬워 영정사진을 분향소에 두고 싶었던 그 어머니...’라고 읊었다.

이어 김동연 도지사는 ‘사진을 받으러 간 도청직원에게 어머님이 하신 말씀은 두 마디였다.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국가의 책임이다” 공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한없이 부끄럽다. 국가의 부재로 일어난 참사 이후 책임의 부재가 이어지고 있다’고 글을 올렸다.

용산 이태원 참사 후 11월5일까지의 국가 애도 기간 동안 설치된 ‘이태원 참사 합동 분향소’에는 단지 이태원 참사 ‘사망자’라고만 쓰여있을 뿐 위패도 영정사진도 없었다.

행정안전부는 합동분향소를 설치하며 내린 공문에  ‘제단 중앙에 <이태원 사고 사망자>라 쓰고 주변을 국회꽃 등으로 장식’하라며 ‘영정 사진 및 위패는 생략’이라고 명시했다.

결국 이태원 참사 희생자는 이름도 없고 영정 사진도 없는 ‘사망자’에 불과하게 된 것이며, 정부가 국민적 충격을 최소화하고 책임 소재를 축소하기 위해 편법을 쓴 것이다.

국가는 과연 이들의 희생을 아파하고 있는가.

대한민국은 1996년 27번째로 OECD에 가입하며 선진국 대열에 발을 디뎠다. 물론 바로 다음해 IMF라는 외환위기를 겪어야 했지만 그 마저도 극복한 나라다. 그런데, 그런 대한민국에 후진국형 사고라는 압사 사건이 발생했으며 정부는 이들을 희생자가 아니라 사망자라고까지 지칭한 것이다.

이후 사회 각계에서 비난이 빗발치자 정부는 ‘사망자’를 슬그머니 ‘참사 희생자’로 변경했으나 여전히 영정 사진이나 위패는 생략했다.

토마스 홉스는 ‘국가란, 사회 내부의 무질서와 범죄 그리고 외부 침략의 위협에서 인민의 생명과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정당하게 행사하는 세속의 신’이라고 했다.

즉 국가가 그 무소불휘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을 때 국민의 생명과 안전과 재산이 피해를 입는 것이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은 희생자들이 아닌 ‘사망자’였다. 이에 더해 국민이 희생되었는 데 어느 누구하나 고개를 깊게 숙이며 “잘못했다. 죄송합니다”라고 공식 사과한 정부 인사나 기관이 없었다.

필자는 12일 지인과 저녁식사 중 기자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속보] 서울시 안전지원과 공무원 숨진 채 발견’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이에 즉시 서울시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 여부와 숨진 공무원이 이태원 참사 관련 업무를 했는가’라고 질문했다. 

왜냐하면 그 전일 ‘핼러윈 축제 인파 급증을 우려하는 정보보고서를 삭제했다는 의혹’으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의 수사를 받던 용산경찰서 정보계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바로 “해당 공무원은 이태원 관련 업무를 맡은 적이 없다”고 바로 선을 그었다. 

그런데 12일 모 언론사에서 “이 부서는 사실 참사 후 지역 축제 안전 대책을 긴급 점검하고 각종 자료 제출 요구도 처리하는 부서였다고 지적하자 서울시가 안전지원과와 참사와의 관련성을 예단하긴 어렵다며 한발 물러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서울시의 입장도, 모 언론사의 보도도 다 믿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필자와 통화한 서울시 관계자는 일단 대답하기 전, 한번 더 확인부터 하고 ‘이태원 참사’와 거리를 두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6일 만인 11월4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영가 추모 위령법회’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너무나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며 “슬픔과 아픔이 깊은 만큼 책임있게 사고를 수습하고 무엇보다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큰 책임이 저와 정부에 있음을 잘 알고 있다”고 시과했다.

그런데, 이미 국민들은 상처 받을 만큼 받은 후 였다.

한덕수 총리는 이태원 참사 관련 외신 기자 간담회에서 웃으며 농담을 해 충격을 안겼는가 하면, 사퇴론이 불거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누군들 폼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나”라는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이에 더해 김은혜 대통령실 대변인과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은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웃기고 있네’라고 필담을 주고 받은 사실이 드러나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로부터 “156명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된 참사 앞에서 비통해하며 책임지기는커녕 지금이 그렇게 자기들끼리 웃을 때인가”라는 비난까지 들었다.

뿐만인가,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한책임’을 언급하면서도 “책임지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는데 사퇴하는 것만이 책임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단언했고,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금 제 거취를 표명하고 이 자리를 피하는 것은 사실 비겁한 것이며 쉬운 길”이라며 사퇴 불가를 표명했다.

또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이태원 핼러윈 행사는 주최 측이 없어, 축제가 아니라 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발언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음에도, 국회 국정감사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책임을 질것인가’라는 질문에 “여러 가지 큰 희생이 난 것에 대한 제 마음의 책임”이라고 답했다.

사람이 죽었다. 158명이라는 생때같은 젊은이들이‥ 

그런데 제대로 된 대통령의 사과는 6일 만에 나왔고 아무도 사의를 표명하지 않았으며, 책임은 경찰과 용산 서방서에 집중되고 있다. 극단적 선택을 한 용산경찰서 정보계장처럼 책임지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죽음은 국민을 안타깝게 했다. 그저 진심으로 사과하고 수습하고 재발방지책 마련하고 그리고 물러나면 될 일이다.

세계 도처에는 국가가 독점적 국가권력을 남용하여 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허다하다. 1900년에서 1987년간 히틀러의 나치 정부, 마오쩌뚱의 문화혁명, 폴 포트의 킬링필드 등 오로지 정부의 손에 의해 죽은 사람의 수가 1억7000만에 이른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는 국가 권력의 남용이 아닌 방만으로 인한 죽음도 그에 못지않을 것이라는 걸 절실히 깨닫게 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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