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황사
                                                   

                                                   이근영

가을에도 땅끝 미황사 법당 앞마당은 꽃을 가지고 있네

이른 아침 대웅전 앞 너른 마당 비질을 할 때 
덜 마른 대나무 가지 하나가 가을의 속살을 깊게 찌르고 말았지

금이 간 계절의 틈

팔이 굵은 동백나무에서 떨어진 말라비틀어진 몇 개의 꽃이 아직도 붉은 향내를 내뿜고 
햇빛 쏟아지는 댓돌에 놓인

하얀 고무신, 가득 
수상한 꽃들 피어나네 동백나무는 절집에 불이 날까 봐 심었다지 그래, 
불이 날까 봐

안과 밖을 유난히 곱게 채색한 문들로 닫혀 있는 허리 낮춘 절집 담장

흔들거리는 풍경 소리
어둑새벽 피워 올린 향내  
꾸부정하게 쏟아져 내린 가을을 쓸어 담고 

뒷걸음으로 자신의 발자국을 지우는 비질

절벽처럼 쌓아 올린 계단 끝에서 직각의 시선으로 발을 내어 디디면  
발자국 사라진 
땅끝

이근영 계간 '시현실' 등단. 포천문인협회 회원. 시럽 동인. 대진대학교 명예교수, 한글학회 이사, (전) 대진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