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쇠가마솥  

                               

                                원순자

그의 입은 늘 들녘을 담고 있다

고봉밥을 지어도 언제나 배가 고프다
마지막 남은 보리누룽지까지 박박 긁어가고 늘 그의 몫은 없었다

흉년들어 저녁거리 없어 맹물 끓이던 저녁에도 
반질반질 윤이 돌던 무쇠가마솥

언제나 집안의 서열은 그가 정했다

소달구지에 실려 가던 피난길 
`다다다다` 쏟아지는 총소리에 솥단지 뒤집어쓰고 고꾸라졌다는 할머니
살면서 힘들 때마다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여~` 하시던 할머니는 집안 서열 1위였다

할머니 기력이 차츰 쇠하시더니 아끼시던 아궁이도 서열이 밀렸다
곳간의 열쇠가 며느리에게 넘어가곤 할머니도 가마솥처럼 서열에서 하릴없이 밀려났다

오늘은 추억의 솔가지에 불을 집혀 밥 한 솥을 짓는다
뜨거운 밥은 버리고 흙밥을 짓고 있다

솥단지 품속에는 금잔화가 수북하다

               사진 신미용
               사진 신미용

 

 

 

 

 

 

원순자 안양 출생. 중앙대교육대학원 졸업. 1997년 홍재백일장 시부문 장원. 2018년 중앙일보 시조 월전 차하
2018년 수원문학 신인상. 수원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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