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주말N시간입니다. 어느새 독서의 계절, 가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시집 한 권을 소개할까 하는데요. 평생을 경영인으로, 사회사업가로 살아왔던 한 사람이 어느 날 아내와 사별하게 됩니다. 그리고 절절한 이별의 아픔을 시로 써 내려가게 되는데요. 이렇게 한 편 한 편 써 내려간 시들을 엮어 시집 ‘왜 몰랐을까’를 펴냈습니다. 이제 하늘에서 편히 쉬고 있을 고맙고 그리운 아내의 영전에 시집을 선물한 정군영 회장의 이야기 함께 만나보시죠.

하늘이 높고 제법 선선한 바람이 가을이 오나 싶은 날, 이른 아침부터 정군영 회장이 길을 나선다. 오늘은 너무나 소중하고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날. 벌써 3년째 다니는 길인데, 갈 때마다 설레고, 마음은 늘 급하기만 하다. 게다가 오늘은 아주 특별한 선물까지 준비했다.

수풀이 우거진 숲길을 따라 걷는 길에 탐스러운 꽃이 피었다. 아침햇살을 오롯이 받고 있는 양지바른 곳이 나온다. 바로 그곳이 아내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한시가 바쁘지만 우선 부모님 선영에 먼저 인사를 올린다. 아내의 묘에 도착하니 근처에 사는 형님 내외가 먼저 나와있다. 연로한 형님 내외가 칠순이 다된 동생을 보러 일찍 발걸음 했다.

정군영 회장은 아내의 묘를 두 팔에 가득 끌어안아 본다. 햇살을 머금어 따뜻하고 짙은 풀향기가 아내의 품인듯, 정 회장은 한참을 그렇게 봉분을 끌어안고 움직이질 않는다. 둑이 터지듯 넘쳐버린 아내를 향한 그리움에 정 회장은 끝내 조용히 흐느낀다. 너무 보고 싶었다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정 회장이 아내와 사별한 건 3년 전, 암으로 아내를 허망하게 보냈다. 이제는 먹고 살만 해졌는데 함께 나누고 싶은 아내는 가고 없다. 이곳에 아내를 안장한 뒤 솟구치는 그리움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내를 찾아와 절절한 회한을 달래곤 했다. 사업하느라 바쁜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은 아내를 찾아와 일상의 일과와 자식들 얘기를 두런두런 나눈다.

아내처럼 아름다운 꽃을 한참 동안 바라보는 정 회장. 아내를 향한 그리움을 잠시나마 달래본다. 
 
1984년 맨바닥에서 아내와 함께 가내 부업으로 시작했던 박스제조업체 두선산업은 어느덧 베트남 해외법인까지 설립하며 승승장구했다. 

정 회장은 두선산업의 성공은 모두 아내의 노력이고 공이라고 말한다. 스물넷 꽃 같은 나이에 결혼해 애들 낳아 키우며 회사 운영하느라 일만 했던 나의 아내 명기정, 정 회장은 그런 아내만 생각하면 목이 맨다. 

정 회장은 아내의 빈자리가 느껴질 때마다 그리움으로 꼬박 밤을 새우며 핸드폰을 열어 시를 썼다. 사무친 그리움은 시가 되고 약이 되어 상처에 새살을 돋우고 삶의 희망이 됐다.

그렇게 3년이 지나니 어느새 아내를 향한 애끓는 그리움은 책 한 권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오늘 정 회장은 그 시집을 아내에게 바친다.

특별한 날, 아내를 추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딸들과 사위, 평소 가족처럼 지내던 이들이 모두 와줬다. 조용하던 아내 묘소가 명절인 듯 모처럼 북적거린다. 아내가 빙그레 웃으며 참 좋아할 것 같다.

“아내가 이 시집을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정 회장의 눈시울은 그새 붉어진다. ‘왜 몰랐을까’ 시집의 이름처럼 아내를 잃고서야 내 삶의 전부가 아내임을 알았다고 고백한 정 회장의 마음이  애절하다.  


손주 오는 날

           정군영

새벽녘 꿈에 
당신이 어린 우혁이를 안고 있었지
당신이 나에게 서리를 맞아서 아주 잘익은
홍시 하나를 건네주었지
어디서 난 거냐고 묻자
옆집에서 동전 하나 주고 샀댔지
살짝 찌그러져 있어서 
손바닥에 올려놓고 뒤집어 보니 
흠짐 하나 없이 깨끗했지
내가 당신에게 주자 
당신은 우혁이에게 먹여주었지

평생을 사업가로 전국을, 해외를 종횡무진하던 칠순을 앞둔 한 사나이의 아내를 향한 굵고 투박한 진심이 엄마를 보낸 자식들을 눈물짓게 한다. 

벌이가 좀 나아지자 아내는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고 특히 아이들이 가정형편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아낌없이 도왔다. 유지를 받들기 위해 정 회장은 아내의 이름을 딴 명기정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명기정 장학회는 도움이 필요한데도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찾아 마음을 나누고 있다. 


당신이 사는 대현리 

                 정군영

예당 저수지 물안개 
결혼 초기부터 다니던 길
예당 저수지 둑길
광시장터길
연하게 내린 블랙커피
인절미도 한 접시 사고 막걸리도 한 통 사서
당신 사는 집 찾아가는 길
지금도 옆자리에 당신이 있어
고개 돌려 쳐다보고 손으로 휘저어 보고
손안에 잡힐 것 같아
해오름 물안개 뽀얀 길
당신 집 가는 길

몇 권의 시집이 세상에 나온들 이 그리움이 그칠까. 먼 여행 떠난 아내에게 소풍 가는 그날까지 아내를 향한 정 회장의 진주빛 절절한 사부곡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아내를 향한 정 회장의 사부곡은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바쁜 일상을 지내다보면 옆에 있는 가족들의 소중함을 잊을 때가 많은데요. 이번 주 ‘왜 몰랐을까’ 시집과 함께 가족의 의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요? 지금까지 주말N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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