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소에서
                                 

                                      박철웅


벚꽃 휘날리는 봄날
그대 얼굴과 이름 석 자,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대 이름 옆에 동그랗게 루즈를 칠할 때
꼭 그대를 사랑해서만은 아니었다
당신 외에는 선택할 수 없는 아픔도 있었다
진달래 상사화 들국화 목련 ...
아름다운 꽃들, 그 옆에 서서 사진 찍는 것처럼
나도 당신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
그대 옆에 나란히 사진이나 찍었으면,
하는 소원도 있긴 한 데
연애편지처럼 그대 이름 석 자, 고이 접어 우체통에 넣듯
사랑과 소망과 기대에 부푼 민초들의 소원 위에
나의 소원도 올려놓긴 한 데
어느 날, 어느 시간부터 그대는
천박한 문장처럼 구겨지고 망가져서
돈 앞에 권력 앞에 헤벌레 입 벌리고 있는
도야지 한 마리 될까 봐
투표소를 나와 그대 얼굴과 이름 바라보면서
잠시 묵례를 하고 돌아서 오는 길목, 
옆구리에 바람이 관통하듯
영 서운타

              화가 박은주
              화가 박은주

 

 

 

 

 

 

 

박철웅 1953년생 전남 해남출생, 2012년「리토피아」로 등단, 플러스경영연구원 대표, 시집 '거울은 굴비를 비굴이라 읽는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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