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송연숙


압박하는 곳마다 꽃들이 핀다
목욕탕의 순한 어깨들
씻고 다듬고 썰던 그 회전근에
장미가 핀다

유월의 담장엔
겉으로 흐르는 피의 겹겹들
고양이 걸음처럼 가볍게 담장을 디디며
계절이 붉게 번져나간다
아름답다, 라는 말을 순환시키는
저 공중의 꽃들

늘 한결같은 자세의 담장
가시를 밟고 사금파리를 말아 쥐고
파란이 담을 넘는 한여름의 어깨 위에
수십 개의 부황 자국이 붉다

거울 속에서 흐려지는 어깨 위에 
백만 송이, 천만 송이, 꽃송이들 흘러 내린다
어머니는 어린 내게 부항 뜨는 법을 가르쳐 준 후
틈틈이 등을 돌려대곤 하셨다
불부황의 유리컵 안에서
만개하던 꽃송이들
신음처럼 붉은 향기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꽃잎이 붉을수록 나는 뭔가 큰일을 한 것 같아 
철없이 흥얼거리기마저 했는데

담장처럼 무너지는 그 어깨 껴안고 
가만가만 몸 흔들며 노래 부르고 싶은 계절
장미성운에서 빛나는 별도 하루아침 이슬 같기만 하다

오뉴월의 담장마다
오뉴월의 거리마다
나쁜 피 뽑아내듯 가시의 틈틈이 붉다

                                  화가 일휴.
                                  화가 일휴.

 

 

 

 

 

 

 

 

 

 

 

 

 

 

 

 

 

 

송연숙 1966년 춘천출생, '시와표현'으로 등단, 2019 '강원일보' '국민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측백나무 울타리', 현재 계간 '시와표현'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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