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두렁 시인 등단
                                 

                    김구슬

코로나 때문에
소수만 탑승한,
시 축제 가는 
썰렁한 버스에서
무연히 창밖을 내다보니
황금빛 들녘 벼이삭들이
대견한 듯 속삭이고 있다

‘선생님, 저것 좀 보세요’
옆 자리 한 시인이 반대쪽 창을 가리킨다
창녕 어디쯤인가
누런 곡식 넘실대는 논두렁에
마을 출신 ‘이 아무개’
시인 등단을 알리는
하얀 플래카드가 파르르 떨며
백조처럼 날아오를 기세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려도 
벼이삭은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누군가는 대지의 한 구석에서 
영혼의 문을 열어젖히고
감각의 해방을 기다린다

봄날, 
초록 풀처럼 싹텄던 누런 낟알은
시인 등단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가느다란 줄기에 힘겹게 매달린 채
들판 가득 
황금물결을 출렁이고 있다 

                                      농부화가 김순복.
                                      농부화가 김순복.

 

 

 

 

 

 

 

 

김구슬 1956년 경남 진해 출생. 고려대학교(문학박사 영문학), 미국 UCLA 객원교수, 한국T.S.엘리엇학회 회장
협성대학교 학장. 대학원장 역임, 홍재문학대상 수상(2018), 루마니아 국제시축제 골드 메달(2019), 몰도바공화국 작가연맹 문학상 수상(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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