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옥 두선코스매틱 대표
노무현 대통령 때 통역 봉사
"지역사회 위해 봉사하고파"

두선코스매틱 정청옥 대표는 한국인 최초의 멕시코 변호사다. 대한민국 1호 멕시코 변호사 타이틀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정 대표는 미국유학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멕시코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정 대표는 멕시코 현지에 도착해서 1년간 어학연수를 마치고 멕시코 우아헤 대학(Universidad Autonma de Guadalajaro) 법학전공에 입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는 외국인 최초로 졸업식장에서 학생대표로 학업 우수상을 받아 이 대학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정 대표는 “과연 학업을 마치고 졸업이나 할 수 있을까?”라는 주변의 우려를 우수한 성적과 변호사 자격 취득으로 모두의 걱정을 한 번에 잠재웠다. 이는 정 대표의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의식과 남들이 하지 않는 일에 더 관심 갖고 도전해 보려는 성향에서 나온 결과다.

정청옥 대표는 멕시코 유학 당시(2005년) 고 노무현 대통령 방문 때 통역 자원봉사를 했다. 유학생 신분인 정 대표가 본 노무현 대통령은 낯 설은 이국땅에서 힘들게 공부하던 유학생에게 힘을 주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 고마운 분이다. 더욱이 정 대표는 통역자원봉사를 하면서 당시 멕시코씨티의 다른 대학에서 법학전공을 하던 현재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정 대표의 남편 역시 멕시코 변호사다. 정 대표는 노 대통령을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힘을 주고 또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해준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

10살 8살 두 명의 자녀를 둔 정 대표는 큰 아이가 초등학교(안산청석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어머니폴리스에 가입해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올해부터는 어머니폴리스가 해체돼 녹색어머니회 활동으로 봉사를 실시하고 있다. 현재 안산청석초등학교 녹색어머니회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 대표는 학교 봉사를 넘어 지역을 위해 더 큰 봉사와 역할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두선코스매틱 정청옥 대표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멕시코 유학 중의 일화에 대해 답변하며 웃음을 머금고 있다. (사진=박웅석 기자)
두선코스매틱 정청옥 대표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멕시코 유학 중의 일화에 대해 답변하며 웃음을 머금고 있다. (사진=박웅석 기자)

-본인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초·중·고등학교를 서울에서 졸업했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하지는 않았다.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다. 다만 새로운 것, 남들이 하지 않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유학 가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말로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결국 멕시코 유학을 하면서 변호사도 되고 인생의 동반자인 남편도 만나고 많은 것을 얻었다. 

-멕시코로 유학을 가게 된 동기는
고등학교 때 유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님도 당연히 유학을 보내야겠다고 마음을 굳히신 것 같았다. 따라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미국에서 영어도 배우고 경영관련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 유학준비를 했다. 미국에서 머물 곳, 학교도 다 알아보고 비행기만 타면 될 정도로 준비를 다 마쳤다. 그런데 아버지(두선그룹 정군영 회장)가 멕시코에 아는 분이 있다면서 아무도 없는 미국보다는 멕시코가 낫다고 해서 멕시코로 가게 됐다. 나도 남들이 많이 가는 미국보다는 멕시코에서 공부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멕시코는 스페인어를 쓴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차라리 미국보다는 여기가 더 경쟁이 있겠다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정말 잘 결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멕시코에서의 유학생활은 어땠나

처음 1년 동안은 언어(스페인어) 공부만 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언어에 대한 재미도 붙이고 열심히 공부했다. 물론 1년 만에 스페인어를 완벽하게 할 수는 없다. 법학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했는데 학교 수업을 하다 보니 무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용어는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법과 관련된 전문용어는 사전을 찾아보지 않고는 해석에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그 어려움이 오히려 여기까지 와서 얘들에게 질 수 없다는 오기가 생기면서 더 열심히 공부 하게됐다. 

-법을 전공하게 된 이유는 

아버지가 사업을 하는데 회사경영에 법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또 재미도 있을 것 같고 경쟁력도 충분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때만 해도 한국인 멕시코 변호사가 없었다. 한국기업이 멕시코와 무역을 하려면 법적인 절차와 과정이 많다. 즉 한국 기업들이 멕시코에서 무역을 하려면 멕시칸 변호사를 고용하고 또 통역을 써야한다. 그래서 멕시코 변호사가 돼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정말로 열심히 공부했다.

-유학당시 어려웠던 점은

내가 입학한 대학은 사립학교로 멕시코에서 꽤 유명한 대학이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학교에 처음 들어갈 때 그 학교 학장님이 ‘너 할 수 있겠냐’고 걱정을 했다. 입학하고 멕시코 애들한테 뒤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공부했다. 나중에 내가 입학하고 나서 교수들이 회의에서 ‘정청옥이 6개월도 못하고 그만 둘 거다’는 말이 돌았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수업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숙제도 많고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막막했다. 그래도 수업시간에 교수가 한 말 정리하고 노트로 만들어 매일 반복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아들을 수 있게 됐다. 나중에는 내가 정리한 노트가 시험 답안으로 나돌아 교수에게 ‘노트 빌려주지 말라. 시험지 답이 다 똑 같다’는 말을 들었다. 기분이 좋았다. 이제는 내가 이긴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 장벽 때문에 사전을 펴놓고 시험을 치렀다.

-멕시코 유학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2005년 3학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멕시코를 방문해 대사관에서 통역을 모집하는 공고를 보고 지원해 통역 자원봉사를 했다. 의전팀 통역담당으로 배치돼 다른 자원봉사자들보다 하루 먼저 노 대통령이 묵을 호텔에 도착했다. 노 대통령이 멕시코 방문 당시 생일을 맞아 호텔에서 생일케잌을 준비했는데 의전팀에서 그 케잌을 나에게 내줘 대통령 생일케잌을 내가 먹었다. 맛은 기억이 없지만 정말로 감정이 벅찼다. 일정이 끝나고 통역봉사자들에게 봉황 휘장이 들어간 대통령 시계를 선물했다. 남녀시계 두 개를 받았는데 남자 시계를 지금의 남편에게 줬는데 그 인연으로 만나면서 결혼을 했다. 남편은 멕시코씨티에 있고 나는 지방에 거주해 한 번 만나려면 8시간 이상을 이동해야 했다. 멕시코가 좋은 기억에 남는 이유 중 하나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계획은 

아이들이 다니는 안산청록초등학교 녹색어머니회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좀 더 범위를 넒혀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일하고 싶다.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일하 수 있는 길은 정치를 통해 가장 빠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내년에 치러지는 지방선거에 출마를 권유하기도 한다. 조금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 젊으니까 기회가 주어지면 도전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일간경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