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과 담쟁이 
                                       

                                 박일만

산다는 것은 색칠하는 일입니다
당신의 바탕이 있어 내가 번질 수 있지요
산다는 것은 기대는 일입니다
당신의 몸을 빌려 내가 자랄 수 있지요
산다는 것은 먼 길 가는 일입니다
당신의 다리가 있어 내가 걸을 수 있지요
산다는 것은 받쳐주는 일입니다
당신의 손이 없으면 나는 앉은뱅이지요


그리하여, 산다는 것은
서로 사랑하다 죽는 일입니다
당신의 생과 나의 생은 길이가 같지요
일생을 얽히며 걸어서
숨과 숨을 섞으며 달려서
꼭짓점에 도착하여 함께 사라지는 일이지요

                           사진 신미용 作.
                           사진 신미용 作.

 

 

 

 

 

 

 

 

 

박일만 1959년 전북 장수 육십령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정(詩) 수료, 2005년 '현대시' 등단.
제5회 송수권 시문학상 수상(2019), 시집 '사람의 무늬'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뼈의 속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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