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실 기자.
                              이형실 기자.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 당나라를 계승하려고 한족이 세운 나라 북송(北宋)에 사마광(司馬光)이라는 역사가가 있었다.

이 사마광이 7살 무렵, 친구들과 술래잡기 놀이를 하던 도중 한 아이가 큰 물독에 숨으려 뛰어들었다. 이 물독은 불을 끄기 위해 물을 담아 놓은 비상용으로 어른 키를 훌쩍 넘기는 커다란 규모였다.

당연히 몸집이 작은 아이는 가둬 놓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친구들에게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 친구들은 발만 동동 구를 뿐 어떠한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주위엔 어른들도 보이지 않아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때 어린 사마광은 주위의 돌을 주워와 독을 깨기 시작했고 곧이어 독은 커다란 파쇄음을 내며 물과 함께 아이를 토해냈다. ‘독을 깨뜨려 친구를 구한다’는 뜻의 파옹구우(破甕救友)라는 고사성어가 생긴 유래다. 

지난 22일, 제301회 2차 정례회 8차 본회의가 열리는 구리시의회 본회의장의 분위기는 엄중했다. 시정답변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를 마무리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일 년 동안 시장이 펼친 시정성과, 실정 등을 평가하는 매우 중요한 의식이기에 시민의 눈과 귀는 본 회의장으로 쏠리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필자는 이번 시정답변은 물론이고 지난달 20일부터 지난 22일까지 33일간 일정으로 열린 제301회 2차 정례회를 기대하진 않았던 게 사실이다. 7명의 의원 중 5명이, 그리고 시장까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기에 결과가 뻔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여당 의원들에게 눈엣가시 역할을 할 야당 국민의힘 의원 2명의 활약을 기대했는데 그마저 물거품이 됐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불난다’는 속담과 같이 야당 의원 2명은 국회의 못된 짓만 배워 정례회 기간 내내 보이콧에 나선 것이다. 그렇다고 명분이 훌륭한 것도 아니다. 단지 감투를 야당 몫으로 배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참,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다. 민주주의 원칙은 과반수에 있다. 쪽수가 밀리면 어떤, 무엇도 할 수 없다는 걸 몰랐었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한 여당 의원들의 독주는 당연하다. 내 밥그릇 내가 지키겠다는데 누가 말릴 수 있는가. 야당으로선 중과부적이다.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회의에 참석해 ‘썩어도 준치’라고 야당으로서의 매서운 존재를 보여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쪽수에 밀릴지언정 의회에 참석해 물어뜯던가 온몸을 던지는 시늉이라도 하는 게 옳다. 그것이 자신들을 선택해 준 시민에 대한 보답이다. 보이콧은 용기 없는 자들의 변명을 위한 행위에 불과하다. 용납이 불가한 행동이다.

이날 시정답변에서 이목 집중된 현안은 한강변 도시개발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사업자 공모에서 평가에 이르기까지 특혜시비와 의혹이 끊이지 않아 언론에 오르내렸다. 혹여 언론이 알고 있는 것 외에 진실이 밝혀질까 내심 기대도 했지만 역시였다. ‘그 나물에 그 밥’이듯 질문하는 의원이나 답변하는 시장은 마치 짜 놓은 각본처럼 모든 사안이 ‘구렁이 담 넘듯’ 두루뭉술 넘어갔다.

엄중한 본회의장에서 질문하면서 웃고 답변하면서 웃고, 무슨 사교클럽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수준 이하였다.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부를 드립니다’ ‘매일 고생하시는 거 알고 있습니다’라고 마치 주객이 전도된 듯한 의원들의 읍소는 차라리 애교였다. 심지어 ‘힘써 달라’는 시장의 말에 ‘열심히 도와 드리겠다’는 의원의 답변을 듣는 순간, 이들은 구리시민을 위한 구리시의회 의원이 아니라 구리시청이라는 회사에 소속된 직장인 같다는 불순한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러면서도 시민을 대변한단다. 수오지심도 모르나.

이렇듯 답이 만들어진 상태에서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시의회의 질문과 집행부 시장의 답변은 그냥 정례회를 거치기 위한 통관의례 그 자체였다. 일례로 시장이 골프를 쳤다면 6하 원칙은 아니더라도 어느 골프장에서 누구와 몇 명이 쳤는지 정도는 캐물었어야 했다. 코로나 재난 상황에 공직자들이 골프를 쳤다면 해임에 해당하는 중징계감이다. 더구나 시장이 시민을 팽개치고 시 경계를 벗어나 골프채를 휘둘렀는데도 5명의 의원 중 누구도 이를 거론하지 않았다. 당연히 질타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두둔했다. 진정 시민을 대변한다면 비록 같은 당 소속의 시장일지라도 의원으로서의 본분을 다했어야 했다. 그랬어야 했다.

초선은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연륜이 있는 2선, 3선 선배 의원들은 왜, 침묵하나. 시장에게 무슨 꼬투리라도 잡혔나.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시장의 답변에 동조하는, 이른바 ‘들러리’를 자처했다는 것은 시민이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다. 이 지경이면 시의회가 왜 필요할까. 그래서인지 ‘지방자치 무용론’이 제기된다. 시민은 구리시의회를 향해 ‘역대 의회 중 이번 8대처럼 무능한 의회는 결코 없었다’며 맹비난 한다. ‘의원으로서 의원의 역할을 못 한다’는 뜻이다. 가슴 아픈 지적이다. 그 소리가 다음 선거 땐 국물도 없다는 비아냥으로도 들린다.

실제로 8대 의회는 집행부의 실정에 대해 수수방관해 왔다. 그 이유를 묻자 보이콧 한 야당 의원들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그건 핑계다. 오로지 우리 편이기 때문에 좋은 게 좋은 거다. 의회를 속여 무려 1600억 원대 사업 승인을 받아도, 4억 원대 락스구매 의혹에도, 시장의 실정이 국민청원에 4번이나 올라도, 코로나 사태에 공직자 등 60여 명이 집단 술판을 벌여도, 간부공직자가 음주운전을 해도, 도시개발사업 특혜의혹에도 등 등 등... 어느것 하나 속 시원히 파헤쳐 시민들에게 제공하지 않았다. 애먼 세비만 받아간 꼴이다. 그래서 구리시민이 불행한 이유다.

위에서 거론한 ‘파옹구우’ 고사성어에서 거대한 독은 조직의 틀이나 고정관념이라고 보면 좋다. 독 안에 빠진 아이를 시민 혹은 국민이라고 생각한다면 글 쓴 의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이 똑바로 박혀 있는 정치인이라면 내편 네편으로 편을 가를 것이 아니라 시민과 국민을 위해 돌을 들어 독을 깨 국민과 시민을 구해야 한다.

진보이건 보수이건 정의와 공정과 진실의 세상을 원한다면 불의와 반칙과 거짓의 독을 깨라. 그래야 정치인이라고 거들먹거릴 자격이 있다. 마침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1위 아시타비(我是他非), 2위 후안무치(厚顔無恥)를 선정했다.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모든 정치인도 그렇지만 특히 구리시의회 의원들은 이 사자성어를 깊이 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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