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의 시간
고주희
비가 올 때만 폭포가 되는 곳에 무지개를 보러갔다
보란 듯이 증발한 것들을 보기위해
터져 나오는 것들을 듣기 위해
바깥을 떠돌아도 안쪽이 얼비치는 안개의 일처럼
투명은 구상나무 아래를 느릿느릿 통과할 뿐
당신이라는 과적을 피해
나 하염없이 길일 때
귓바퀴를 타고 느릿느릿 저녁은 온다
타일 사이를 흐르는 거품처럼
깨진 손과 그림자의 흰 발바닥
바닥은 한없이 젖었는데
울음은 나의 어디쯤 도착했을까
물컹한 얼굴 하나가
눈에 띄는 상처 없이 전진중일 때
온갖 것을 다 내어주고도 얻지 못한
아름다운 결말
길이라는 파문이 몸에서 시작될 때
그 많던 달팽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고주희 1976년 제주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시와 표현'을 통해 문단에 나옴, 2019년 시집 '우리가 견딘 모든 것들이 사랑이라면'이 2019년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로 선정됐다.
일간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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