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실 기자
이형실 기자

이순을 넘긴 세대들은 지금처럼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던 곤궁한 시절을 겪었다. 그 시절, 이러한 고기를 실컷 먹어보고픈, 소박한 술자리에 대리 만족할 수 있는 안주로는 소 껍질 부분인 수구레와 돼지 대장으로 만든 곱창 요리였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못한 직장인들에겐 이 음식은 가벼운 주머니 사정에도 단백질과 지방을 보충할 수 있는 유일한 기름진 먹거리였다. 그래도 수구레는 소 부위였기에 냄새가 나는 돼지의 곱창보단 한 수 위로 쳤다. 특유의 쿰쿰한 누린내를 잡기 위해 깻잎·들깨 등이 들어간 곱창볶음·찌개는 서민의 애환과 어울리는, 그 당시엔 푸짐한 음식이었던 것이다.

곱창은 돼지의 분변이 만들어지고 통과하는 부위인 대장을 지칭한다. 따라서 이 부위가 요리로 탄생하기 위해선 철저한 세척이 필요하다. 제대로 씻지 않으면 곱창 내부에 분변이 남아 있을 수 있다. 이대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 즉 돼지 똥을 먹는 셈이다. 실제로 세척 불량의 대장으로 조리한 음식점의 사례가 지난 2014년 11월 말과 2015년 한 방송국의 프로그램으로 방영된 바 있다. 이 때문에 다소 거부감도 있지만 그래도 깨끗하고 믿을 수 있는 음식점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음식은 곱창밖에 없었던 것 같다.

구리시엔 곱창으로 유명한 골목이 있다. 구리시 아홉 곳의 명소인 구경(九景) 중 하나로 지정된 이 돌다리 곱창 골목은 지난 90년대 후반, 포장마차에서 곱창을 팔던 상인들이 가게를 꾸미면서 곱창 골목으로 형성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올해로 22년째인 곱창 골목은 50m 골목에 11개 업소가 성업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코로나 확진자가 연일 세 자리 숫자를 기록하던 지난 13일 저녁, 이 곱창 골목은 ‘곱창 데이’라는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로 인해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동원된듯한 수많은 공무원과 각 단체에 소속원들의 인파는 좁은 골목을 북새통으로 만든 것이다. 이들에겐 1m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도 거추장스러운 준칙이었다. 질병관리청이나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이 광경을 목격했다면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 어이없어 쓴웃음만 나오게 만드는 무모하리만큼 저돌적인 이 행사의 주된 목적은 과연 뭘까.

안승남 구리시장은 뜬금없이 11월13일을 ‘곱창데이’로 지정했다. 그 이유를 시는 ‘곱창 골목 업소의 이용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거리낌 없이 밝히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날을 기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겠다는 공직자 500여 명과 기관단체 회원들과 함께 이 골목에서 ‘곱창 먹기’ 행사를 계획했다. 그리고 정부와 국민은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엄중한 시기에 191명 확진자가 발생한 13일 저녁, 보란 듯이 당당하게 행사를 개최했다. 

이 행사를 개최하기 전, 시는 “불법 점유시설 철거에 앞장서 준 곱창 골목 18개 업소 상인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행사를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침체된 상권 활성화’라는 뒷말은 일종의 너스레다. 단지 상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차원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을 보은으로 포장한 안 시장의 또 다른 꿍꿍이속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앞부분에서 밝혔듯 시는 ‘불법을 자진 철거한 상인들이 고마워서 행사를 기획했다’고 했다. ‘네가 해준 만큼 나도 해 주겠다’는 협상 차원의 발상인가. 아예 철거비용까지 보전해 주지 그랬나. 불법은 법에 따라 처리하는 게 정도다. 따라서 불법은 자진 철거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공권력으로 강제 철거하면 된다. 그게 행정이고 순리다.

그런데 뭐, 시가 철거해야 할 불법시설을 자진 철거해 준 상인들이 고마워서, 그래서 ‘상인들과 연대 강화와 업소별 매출 증대를 위해서 ‘곱창데이’ 행사를 개최한단다. 개가 웃을 일이다. 공신력을 담보한 시가 책임지지 못할 어처구니없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을 수 있을까. 구리시청이 무슨 당나라 행정기구인가.

시는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이 행사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게 사실이라면 시는 대단한 응집력을 가진 조직으로 어떠한 난관도 헤쳐나갈 수 있는 기초를 쌓은 셈이다. 그런데 들리는 소리는 영 딴판인 걸 보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코로나가 확산 추세에 있는데도 이날 행사에 공무원이 대거 참석한 것을 보면 ‘불이익을 준다’는 뒷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긴 하다.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심각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공무원들이 ‘지자체장의 사병화’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꼭 공무원들이 참석할 행사가 아닌데도 머리 숫자 채우기 위해 동원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공무원노조는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공무원들이 행사에 동원되어도 업무에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라면 필경 공무원 수가 쓸데없이 많은 현상이다.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동원으로 업무에 공백이 생긴다면 문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기에. 이처럼 불필요한 인력 동원은 자칫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지자체장은 자기 치적을 위해 공무원을 동원하는 행정은 지양해야 한다.

‘월급은 적지만 평범한 저녁이 있는 삶을 살겠다’고 심정을 밝힌 9급 공무원인 서울대생 출신의 글이 잔잔한 여운을 준다. 이 공무원은 지난 10월 중순, 서울대 재학생과 졸업생들만이 영유할 수 있는 온라인커뮤니티에 자신의 심경을 담은 글을 게재했다. “지방직 9급 공무원에 합격했다..월급은 150만원 정도 받지만 저녁이 있는 삶이 더 중요하다”고.

이번 ‘곱창 데이’ 행사에도 시는 공무원들을 주축으로 행사를 진행됐다. 이중 곱창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휴일을 즐기기 위해 가족들과 약속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강압에 의한 참석이라면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택했다는 서울대생처럼 누구든 이 자유를 뺏을 수 없다. 시장이라면 더욱더 안된다.

코로나 확산이 염려되는 가운데 이 ‘곱창데이’ 행사에 공무원들이 강제적이든, 자발적이든 간에 대거 참여했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시는 행사와 관련된 관계부서 직원들을 제외하곤 공무원들이 참여할 의사를 밝혔다 해도 말렸어야 했다. 설령 일부 영혼이 없는 딸랑이 역할의 공무원들이 참석하겠다고 하더라도 차단하는 게 옳다. 좁은 음식점에 대규모 사람들이 모여 술과 음식을 먹는 행사는 더욱 감염률을 높일 수 있어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날 시는 행사에 참석한 공직자들을 상대로 감염 수칙을 철저히 이행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는 물체가 아니다. 완벽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시청은 교회나 요양 시설이 아니고 20만 시민이 이용하는 기관으로 만약 이 행사에 참여한 공직자 중 한 명이라도 감염되면 시는 한마디로 ‘셧 다운’이 될 수밖에 없는 불행한 사태를 맞는다. 이것이 공무원들의 대거 참석을 염려하는 이유다.

만에 하나 이 불행한 사태가 도래한다면 시장은 직을 내려놓아야 하는 위기에 봉착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엄중한 일이다. 재래시장 관계자들과 상권 활성화 재단 관계자들을 주축으로 정체불명인 ‘곱창 데이’ 행사를 치러도 충분한데 굳이 공무원들까지 행사에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정 불법을 자진 철거한 상인들이 고맙다면 ‘시간이 허락할 때’ 이용하도록 부하 직원들을 독려해주는 게 시장의 도리다.

전 세계의 정세를 꿰뚫는 박학다식한 유튜브 운영자가 있다. 그는 이번 미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을 공언했다. 그러나 필자는 그의 몸가짐이 지도자로서 적합하지 않았기에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추운 날씨가 아닌데도 가죽장갑을 끼고 삐딱하게 서서 연설하는 그의 자세, 웃음기가 없는 성난 표정, 언론이나 시민들을 향해 손가락질하거나 입에 담지 못할 망발을 해 대는 오만불손한 태도, 자기가 임명한 국무위원을 야멸차게 내치는 성정, 공명심에 가득 차 마스크를 팽개치거나 모자를 던져 주고 심할 정도로 ‘엄지 척’ 제스처를 하는 그의 경거망동한 행동을 봐 왔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이든 간에 명색이 지도자라면 내적으로 겸손과 외적으론 위엄을 갖추어야 한다. 명백하게 선거에서 패한 결과가 발표됐는데도 승복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할 말만 하는 트럼프를 향해 미국민은 “You are fired!”를 외치고 있다. 오죽하면 그럴까. 이 외침은 구리시민단체의 응어리 진 마음을 향한 메아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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