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서 가평중고 총동문회장.
                                        박범서 가평중고 총동문회장.

얼마 전 군청 일자리경제과에 근무하는 모 후배로부터 설악면 교원연수원에서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배와의 대화’ 프로그램이 있으니 참여해 달라는 전화가 왔다.

진로지도가 아닌 선배와의 대화라고 했다. 어떤 학생들이 방학 중에 2박3일간 시간을 내어 프로그램에 참가했는지 궁금했고 담당 선생님께서는 학업에는 그다지 열의가 없으나 성격 좋고 매사 적극적인 아이들이 대부분이라는 팁을 주셨다.

무엇을 이야기할까 며칠 고민하다가 그저 내가 살아온 과정을 진솔하게 말해 주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산만할 수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는 초반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하는 것이 중요한 법, 처음부터 좀 파격적으로 시작했다.

먼저 세상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냐고 물어보았다. 대답이 없었다. 난 소위 ‘운빨’이라고 했다. 학생들이 일제히 쳐다보았다.

“너희들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 것은 아니니 지금 살고 있는 그 가정에서 태어난 것도 운명이다” 그리고 송중기, 송혜교가 태양의 후예에서 캐스팅 돼 교제하다 결혼한 후 이혼한 사실을 아느냐고 물어 보았다.

아이들은 관심을 보이며 안다고 대답했고, 난 그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했다. “130억의 제작비가 투입됐고 수 백억의 프로그램 판매 흑자를 기록하고 투산 자동차의 간접광고를 비롯한 경제 유발효과가 1조원에 이른다. 당초 그 드라마에 주연으로 섭외된 사람은 이병헌, 원빈 등이었으나 소속 기획사에서 거절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최종적으로 송중기가 캐스팅됐는데 송중기는 태양의 후예로 부와 인기를 한꺼번에 얻었으니 이 또한 운빨 아닌가” 이후 한 번 더 관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러 번 실패한 나의 2등 인생을 얘기하며 그래도 학교 다닐 때 반장, 회장은 도맡아 했는데 그 이유가 김구라의 그 ‘구라빨’이라고 했더니 학생들이 크게 웃었다.

그 후 본론으로 들어가 다소 진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본의 생태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가 무한경쟁의 틀을 벗어나 자기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자연계의 약자들을 통해 현대인이 배워야 할 생존전략을 제시한 ’이토록 아름다운 약자들‘이라는 책을 소개했다.

동물의 세계에서 가장 게으르다는 나무늘보는 한 번 먹고 난 후 나무에 매달려 일주일 이상 움직이지 않으면서 이끼 낀 털이 맹수로부터 보호하듯 틈새를 찾아 생존하는 모든 생물은 승자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라는 말과 함께 생물도 이러한데 개개의 한 인간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사실 요즘 고등학생들 중에서 자신 목표를 명확히 설정해 대학을 선택하고 미래 직업을 향해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학생은 극히 드물다. 어쩌면 그랬으면 좋겠다는 부모의 바램이나 경쟁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학생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방해하는지도 모른다.

우선은 학생들의 자존감을 높혀 주고 어떤 이유에서 세상이 살만한 지를 알려주는 것과 부지불식간에 강요되고 비교되는 선택을 하지 않도록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들에게 물론 말해 주었다. 꿈이라는 것은 물질적인 번영보다도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기쁨에 가득 찬 삶을 살아가는 것과 긴밀히 맞닿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아무리 ’운빨‘이라고는 하나 병아리가 세상에 나오기 까지는 어미닭이 알을 품어줘야 하지만 알속의 병아리가 부리로 알껍질을 쪼아야 한다는 사실을...

자신의 힘과 활기를 최대한 끌어모아 목표를 향해 움직이되, 자신보다 더 큰 그 ’힘‘에 계획을 맡기자는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TV진행자 오프라 윈프리의 말도 전해 주었다. 동서양 모두 진인사대천명을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요즘 가평 4개 고등학교 동문회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가평 재능기부 전문인력뱅크‘의 설립에 매진하고 있다. 네이버나 구글과 같은 사이버 공간에 수많은 정보가 있으나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서 태어난 선배들이 전해 주는 경험과 정보가 얼마나 학생들에게 유용한지를 알고 있고, 디지털 시대에 SNS가 대세라고 하지만 품을 들여 직접 대화하고 정감을 나누는 아날로그 방식이 더해져야 비로소 완전한 관계망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여러 번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지만 이번 선배와의 대화에서 학생들이 보여준 관심과 공감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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