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실 기자
               이형실 기자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 초등학교를 다녔던 필부들은 기억할 것이다.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고 불렀던 당시 그때는 학급마다 ‘주번’이라는 직책이 있었다. 알다시피 주번의 임무는 1주일씩 돌아가며 학급의 허드렛일을 하는, 요즘의 봉사와 같은 맥락의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노란 바탕에 초록색 글씨가 박혀 있는 완장을 차면 학급의 모든 아이는 자기 수중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떠드는 아이에게 호통을 칠 수가 있었고 자기 말에 순종하지 않는 아이는 담임선생에게 고자질해 벌을 내리게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완장의 제도는 자신들의 업무를 분산시키려는 교사들의 계략에서 비롯됐는데 그 위력은 상당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국인의 파행적 권력의식의 상징이었던 완장의 가슴 아픈 일례다.
   
최근 진보계로 분류되는 안치환 가수가 부른 ‘아이러니’라는 노래가 있다. 일품의 깜냥도 아닌 것이/ 눈 어두운 권력에 알랑 되니/ 콩고물의 완장을 차셨네/ 진보의 힘 자신을 키웠다네
참, 기가 막히게 현 정치 세태를 풍자한 노랫말이다. 권력 언저리에서 노닐다 재수 좋게 운 좋게 정치에 편승하여 지방선거에서 총선에서 희희낙락하는 일부 자격 미달 정치인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움찔할 것이다. 왜, 자신이 누구보다 자신을 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1월20일부터 온 국민의 일상화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덕분(?)에 자유가 어떤 것인지 알았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귀중함도 깨달았다. 더욱이 공기의 소중함을 깨우치게 된 것은 최대의 선물이었다.

이런 것들을 위해 온 국민은 고통과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정부의 감염대책에 순응하고 따랐다. 그러나 한 지방자치단체장의 행보가 우울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한다. 더욱이 이 단체장은 모든 시민이 방역을 준비하는 시기를 마치 축제를 치르는 시기로 착각하는 양 어처구니없는 망동을 서슴없이 자행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중앙방역대책본부는 1차 사회적 거리두기에 이어 4월20일부터 5월 5일까지 강도 높은 2차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을 설정하고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호소했다. 정부와 경기도도 불요불급한 단체행동을 자제해 줄 것을 지시했다. 

이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엔 모든 국민은 밀폐된 공간 또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고 불필요한 외출·모임·외식을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등 외출자제, 2m 거리 두기, 악수와 주먹 인사 않기 등 고통을 분담하는 시기였다는 걸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말이다. 안승남 시장은 구리시의 감염확산 방지를 진두지휘할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대책안전본부의 본부장 신분임에도 강도 높은 2차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인 4월26일, 오후 6시30분부터 9시까지 2시간30분 동안 ‘경선승리 2주년 기념’이라는 해괴망측한 이유를 들어 술 파티를 벌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그것도 대여섯 명이 아닌 50∼60여 명이 모여 집단 축하 술판을 벌였다 하니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밀착, 밀폐, 밀접 등 3밀 지양’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정치성향의 모임에 공직자 간부들이 대거 포함된 공직자 십여 명이 참석해 소위 ‘딸랑이’ 노릇을 했다는 후문이다. 공무원이 정치에 물이 들면 그 공직사회는 이미 파탄 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게다. 

안 시장의 술 편력은 이번만이 아니다. 구리시에 17번 확진자가 발생해 비상경계령으로 24시간 방역대책본부가 가동되던 지난 2월 중순, 안 시장은 본부장 신분으로 여성 2명과 주점에 들러 음주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등 여흥을 즐긴 사실도 드러났다는데 그 심각성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다. 관변 시장이었으면 진즉 파면감이 아닌가. 

그런데도 안 시장은 중대한 사안에 대한 대 시민 사과는 하지 않고 있다. 시민들은 고통을 받건, 불안에 떨든 간에 나만 즐기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참으로 안타깝다. 

코로나19가 종식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확산될 조짐에 시민들은 불안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 와중에 안 시장은 10일부터 14일까지 여유롭게 휴가를 떠난 것으로 파악됐다. 대단한 강심장을 소유한 것만은 사실이다. 대통령이나 국무위원, 각 자치단체장의 휴가 소식은 아직 접하지 않은 상태다. 

정치적 색깔의 집단 술판 파티에 참석한 공무원의 행위와 관련 구리시 감사부서는 감사에 대한 계획을 미루고 있다. 4월26일이 일요일이기 때문이란다. 참, 편한 발상이다. 코로나는 일요일에 활동을 멈추는가. 이런 것을 두고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한다.

한 사회단체는 안 시장의 이러한 행태를 보다 못해 상급기관에 진정할 움직임이 포착됐다. 

이 중차대한 시점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감투란 자신의 머리에 맞게 써야 한다. 맞지 않으면 스스로 벗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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